[경일포럼]메르스와 임진왜란
[경일포럼]메르스와 임진왜란
  • 경남일보
  • 승인 2015.06.1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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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위 (전 고려대학교 초빙교수)
일찍이 들어본 적도 또 본 적도 없는 메르스(MERS)라고 하는 괴질이 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상륙하여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이런 사태를 보면서 어쩌면 이렇게도 500여년 전의 임진왜란 때의 정경과 닮았는지 소름이 끼칠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전인 1591년(선조 24) 정세를 살피기 위해 일본에 갔던 사신들이 귀국하여 임금에게 보고한 내용은 소속 당파가 어디냐에 따라 판이하게 달랐다. 정사인 서인 측의 황윤길은 “병화가 있을 것”, 동인 측의 부사 김성일은 “공연히 인심을 동요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동인과 서인들은 두 사람의 말에 따라 춤추고 있었다.

지난 얼마동안 우리의 정정(政情)도 이와 똑같았다. 메르스에 감염되는 환자의 수는 하나 둘 증가해 가는데 정치권에서는 이에 아랑곳 없이 여·야간에 공무원연금법개정안을 놓고 싸움질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협상을 통해 정부가 제정한 각종 시행령에 대해서도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직접적으로 제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국회법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그러자 이제는 국회법개정안이 위헌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여·야는 또다시 한쪽은 강제조항 여부를 두고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했다. 일본을 보고 나서 동서로 패가 갈린 사신들이 정반대의 보고를 한 것과 어찌 그리도 똑같은지 정말로 신기할 정도다.

정부가 메르스에 대처해 나가는 과정도 또한 임란 때와 너무나도 흡사하다. 우선 2012년 부터 메르스에 대한 경고가 울렸는데도 이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과 초기 대응에서 실패한 점에서도 너무나 닮았다고 할 것이다.

1592년(선조 25)4월, 왜군이 한양을 향해 진격해오자 기병출신인 신립장군을 토벌대장으로 앞장 세웠다. 기병 수천명을 데리고 산악지대를 버리고 평야지대로 나가 10만이 넘는 적군과 싸우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메르스 환자는 지난 5월 20일에 발생하였다. 그로부터 16일이 지난 뒤에야 정부에서는 1번 환자가 발생한 평택 성모병원을 공개하면서 병원 방문자를 전수 조사하기로 하였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그 사이 바이러스는 파죽지세로 번져 나갔다. 질병관리 본부의 수장인 장관은 보건 의료문제에는 문외한인 복지전문가였다.

그러는 사이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심은 극도로 팽배해 가고 있었다. 임란 때의 백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립장군이 탄금대 전투에서 실패했다는 소식에 대신들은 피란과 강화를 두고 논쟁만 했다.

마찬가지로 메르스로 온 나라가 공포에 휩싸여 있는데 각 당마다 친노네 비노 또는 친박 비박 하면서 갈등하고 있었다. 청와대는 당정과 함께 논의하기로 한 약속도 없었던 것으로 하고 대통령은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잠재울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임란 때 각 고을의 관리들은 고을 주민 모두에게 적을 피해 도망가라는 격문만 띄우고 왜병을 맞아 싸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는 모든 감염대상자들에게 가택격리를 하라는 지시만 할 뿐 개별 진료나 격리를 할 병상 하나 제대로 마련해 주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메르스 징비록(懲毖錄)’을 써 남겨야 할 것 같다.

 
김중위 (전 고려대학교 초빙교수) 경일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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