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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47)<108>경남지역의 문인 등단50주년 기록자들(16)
곽동민  |  dmkwak@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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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21  20: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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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는 1960년대 중반부터 그의 전매특허격인 ‘무의미시’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무의미란 말 그대로 의미가 없다는 말이고 무의미시는 시에서 의미를 배제하는 시를 말한다. 물론 이런 시는 실험시라는 별종이지 정상의 상태를 표현하는 시라고는 볼 수 없다. 언어는 언제나 뜻을 포함하는 데서 생겨난 것이지 무의미를 표시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김춘수의 무의미시에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무의미를 실현하는 시편들을 써 보기도 했다. 그러나 무의미시는 지향이 그렇다는 것이지 엄밀히 보아 무의미시는 존재하지 않는 시다. 의미를 배제해 놓고 써 보면 어느샌가 의미가 마실 같다가는 담배 한 대 입에 무는 사이 살짝 들어와 신발을 털고 있다.

김춘수가 그의 이론서들에서 언급해 놓은 ‘무의미시를 쓰게 된 동기’를 기억으로 더듬어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시대는 언어로 무엇인가를 말하지만 이행되거나 성취되는 일은 전무하다. 그렇다면 그 좋은 말로 힘들여 가며 뜻을 드러내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실례를 하나 들자. 아침 출근 시간 만원 버스를 탔는데 차장이 나를 밀어올리고 하는 사이 내 옷은 형편없이 구겨져 버린다. 그리고 그 비좁은 차 속에서 겨우 겨우 견디다가 내릴 지점에 닿아 문으로 옮기는 중 단추가 달아나고 또 다 내리지도 않았는데 차장은 내 등을 사정없이 아래로 밀어버린다. 나는 저쪽으로 가 나동그라졌다. 차는 차장의 오라이 소리에 따라 연기를 내며 붕 떠나버린다. 나는 그 차장을 향해 삿대질 한 번 못한 채 흙을 털고 일어서서 형편없는 모습으로 직장으로 간다. 그렇다. 나는 벌건 대낮에 이렇게 당하고도 억울한 사정을 따져 보지도 하소연해 보지도 못하고 산다. 버스 한 대가 갖는 출근길 사정에 대해 제대로 말을 못하는, 그 말의 무기력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나는 그래서 말을 포기하기로 했다. 시에서 말의 의미를 포기함으로써 현대에 적응하고자 하는 것이다.”

필자가 살을 많이 붙였다. 어쨌든 김춘수는 말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 시대에 그 말의 기능을 포기하는 것이고 거기 대응한 시는 무의미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존재함으로부터 오는 부조리를 김춘수 나름으로 설명하는 것인데, 실존주의의 한 작품인 ‘이방인’에서는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삶으로부터 오는 형용할 수 없는 권태 같은 것을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김춘수는 거기 한 술 떠 떠서 말에다 승부를 걸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 만년에 들어 점점 의미가 되살아나고 무의미 시절의 리듬 같은 것만 남아 있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언어로 빚어내는 것은 비언어적 의도를 보인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언어로 돌아오는 것이다.”라는 결론 말이다. 이쯤에서 필자는 또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닿아 있다. “무의미시는 유의미시가 있을 때 그 변방에서 거닐 수 있지만 유의미시가 깡그리 없어진 때에도 한량이 되어 거닐며 노닐 수는 없다. 다시 말해서 무의미시는 유의미시라는 부빌 언덕이 있을 때 그 부분적 의미가 살아날 수는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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