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를 찾아서] 코렉스 자전거 금성대리점
[노포를 찾아서] 코렉스 자전거 금성대리점
  • 강민중·오태인기자
  • 승인 2015.06.2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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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퀴 50년…세월을 달렸다
 
50여년간 자전거점을 운영해온 김동범 사장



당시 자전거의 가격은 1만5000원, 일반 직장인 급여의 절반 정도에 해당할 만큼 고가의 제품이었다. 자전거방이 호황을 누리면서 당시 진주시에만 150여곳의 자전거방이 성황을 이뤘다고 김 할아버지는 회상했다. 하지면 현재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곳은 눈씻고 찾기가 힘들다고 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그러나 어느 누군가는 일터로 향할지도 모를, 새벽 6시. 오래된 듯한 옛 간판에서부터 세월의 때가 묻어나는 낡은 자전거가게에 불이 켜진다.

주인으로 보이는 한 노인은 잠시 가게를 둘러보는 듯 하더니 누구와 약속이라도 한듯 밖으로 나와 인접한 시장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나이가 지긋한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방 역활을 하고 있는 김사장의 자전거점.


시원한 새벽공기를 가르며 장사채비를 하는 주변 상인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잠에서 깨자마자 주변 골목을 걸으며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이 노인의 아침운동인 셈이다. 그렇게 걷기를 30~40여분. 가게로 돌아온 노인은 천정에 걸려있는 수많은 자전거들을 피해 안쪽 구석에 위치한 자신의 책상에 앉아 새까맣게 손때묻은 다이어리에 빼곡히 적혀있는 주문내역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진주시 평안동 133번지(롯데인벤스 정문앞)에 소재한 ‘코렉스 자전거 금성대리점’ 대표 김동범(78)할아버지가 수십년째 지켜온 아침풍경이다.

김 할아버지는 50여년간 이곳에서 자전거가게를 운영했다. 주변 대부분의 상가들이 업종을 변경하거나 문을 닫았지만 김 할아버지는 간 큰 고집으로 이 자리를 지켜왔다.

33㎡(7~8평)도 채 되지 않은 조그만 가게 천정에 빽빽하게 걸려 있는 자전거들, 바닦에는 한창 수리중인 자전거부품들로 발디딜틈이 없었다.

이런 광경을 본 것도 얼마만인가. 레저붐이 불면서 자전거 가게도 대형화 되고 화려한 인테리어 때문에 되레 자전거가 뭍히는 요즘이다.

이런 가게들과는 달리 자전거로만 채워진 김 할아버지의 가게는 그래서 연륜과 장인정신이 묻어난다.

 

김동범 사장의 자전거점은 50여년 전부터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전거가게’라기 보다는 김 할아버지 입에 붙은 ‘자전거방’이라는 말이 더 친숙하게 들여오는 이유다.

김 할아버지는 이 좁은 자전거방에서 50년간 흘린 땀으로 자식 셋을 키워냈다.

그는 견직회사에서 일을 하다 군대를 다녀 온 후 30세의 젊은 나이에 처음 이 가게를 열었다.

“6·25 전쟁통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이곳이 당시 집이었는데 먹고 살게 없어서 군대에서 자동차 정비 기술을 살려 비슷한 자전거방을 열었어. 그때부터 50년이야.”

1960년대 중반, 자전거가 대표적인 교통수단이던 시절인 만큼 장사도 잘됐다.

특히 이곳은 당시 진주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중심상권이어서 큰 기대와 희망을 걸고 자전거방을 야심차게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강건너(현재 주약동)에 대동공업사가 있었어. 직원들도 엄청 많았는데 대부분이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거든. 그때 장사가 가장 잘됐던 시절이야. 한달에 30대씩 팔았으니까. 또 여기가 가장 번화가 였던 때였어. 가게 앞에 법원도 있었고 잘될 수 밖에 없었지. 왜 장사를 이제야 시작했나 생각했을 때니까.”

당시 자전거의 가격은 1만5000원, 일반 직장인 급여의 절반 정도에 해당할 만큼 고가의 제품이었다. 자전거방이 호황을 누리면서 당시 진주시에만 150여곳의 자전거방이 성황을 이뤘다고 김 할아버지는 회상했다. 하지면 현재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곳은 눈씻고 찾기가 힘들다고 했다.

김 할아버지는 고령의 나이에도 교회에 가는 일요일을 제외하면 항상 오전 6시에 가게 문을 열고 오후 7시에 영업을 마감한다.

주 고객층은 인근 중앙시장 상인들과 진주 인근 군지역, 면단위 손님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팔순을 바라보는 김 할아버지에게는 손님이 많거나 적은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가게문을 여는 가장 큰 이유는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가게문을 열자”는 자신과의 약속 때문이다.

또 오랜기간동안 한 곳에서 장사를 하다 주변상인, 친구들이 찾는 사랑방 역할도 이유 중 하나다.

“처음에는 6·25 직후라 먹고 살게 없어서 장사를 시작했어. 아버지가 전쟁통에 빨갱이들한테 돌아가셨거든. 우리애들 밥안굶기겠다는 생각이었지. 지금은 수입보다는 놀이 삼아서 하는 거지(웃음).”

김 할아버지는 최근 몇년만에 자신과 동시대를 살아온 배경을 다룬 영화 ‘국제시장’을 보셨다고 했다.

“내가 맨날 6·25 얘기만 하니까 딸이 흥남부두 영화라면서 영화티켓을 가져왔더라고. 보는 내내 내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는 듯 했어. 크게 공감했다기 보다 참 어려운 시기에 장사를 시작하면서 이웃과 비위 상하지 않고 이제까지 잘해왔다는 생각이 머리속에 지나가더라고….”

장사의 호황이 있으면 불황도 있을 터. 인터뷰 말미에 50년 한 업종을 이끌어온 김 할아버지에게 ‘왜 끝까지 자전거방이었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너무 간단했다.

“옛날 부동산 붐이 불었던 시절에 유혹도 많았지. 이곳을 팔아 부동산에 투자하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어. 그런데 이곳을 떠나면 앞으로 점포는 못할 것 같더라고 그래서 눈도 안돌렸어.”

마지막으로 요즘처럼 몇개월만에 생겼다가 없어지는 가게들, 경기불황에 어려움을 겪는 후배 장사꾼들에게 김 할아버지는 ‘끈기’라는 노하우를 전했다.

“한번도 업종을 바꾼다는 생각을 안해봤어. 장사를 시작하면 뭐든지 끈질기게 해야돼. 오래 하다보면 지독하게 안될때가 있어. 무슨업종이든 마찬가지야. (장사는)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어. 고비를 잘 넘기고 이어가다보면 분명 잘되는 때가 와. 또 솔직히 장사꾼이 장사 아니면 먹고살게 없잖아. 열심히 해야지.(웃음)”

글=강민중기자·사진=오태인기자


 

김동범사장의 자전거 가게는 세월이 흔적이 곳곳에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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