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위식의 발길닿는대로 (69) 갈계숲과 송계사
윤위식의 발길닿는대로 (69) 갈계숲과 송계사
  • 경남일보
  • 승인 2015.06.3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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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으로 스며든듯 그림같은 선비의 옛 집
 
서간소루와 임씨고가


또랑또랑한 물소리는 도란거리는 젊은이들의 사랑이야기가 있어 좋고 반석과 어우러진 청정옥수의 소가 있는 계곡은 가족 나들이의 화목함이 있어 좋고 바람이 머무는 숲속의 정자는 묵은 벗과 나누는 청담이 있어 좋고 송진 내음 그윽한 솔숲 짙은 외진 길은 외로운 이의 그리움이 있어 좋고 굽이굽이 돌아 오른 고갯마루는 옛 세월을 돌아보는 추억의 아득함이 있어 좋은 거창의 북상면으로 길머리를 잡고 갈천 임훈선생을 찾아뵐 요량으로 ‘갈계숲’을 찾아서 차를 몰았다.

남덕유산의 자락을 깔고 고산준봉을 울타리 삼은 경남 내륙의 깊숙한 끝자락인 북상면을 향해 마리면삼거리에서 37번 도로를 따라가다가 수승대와 금원산을 일러주는 표지판의 안내로 위천천을 가로지른 장풍교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했더니 널따란 주차장까지 마련한 그림 같은 풍광이 차를 세웠다. 신선들이 노닐었던 바윗돌일까. 달빛이 쉬어가는 노송의 그늘일까. 웅장한 바윗돌 예닐곱을 무더기로 쌓아서 위천천 맑은 물에 끝자락을 담그고 십여 그루의 노송으로 그늘을 지웠으니 그림 한 점을 오롯이 떠다 놓은 신선들의 별서일까. 시인묵객을 희롱하려는 누구의 소작인지 알 수는 없으나 ‘원학동’이라는 음각의 붉은 각자와 ‘수오제조선생 유영지소’라 새겨졌으니 옛사람들의 시흥이 젖은 비경이다.

산자수명한 거창은 사방천지가 절경절승의 비경들이 널려있어 어디를 가나 풍광에 홀리면 십리도 못가서 해를 잡는 곳이라서 금원산도 뿌리치고 정온선생 고택과 반구헌도 뒤로하고 농산리 석조여래입상도 후일로 기약하고 수승대도 외면한 채 용암정도 힐끔 지나 북상면초등학교 정문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갈계숲


학교 앞의 담장을 따라 좁은 길로 들어서면 울창한 숲이 하늘을 덮었는데 아름드리 노송들이 활엽수와 어우러져 울울창창한 장관을 이룬다. 숲속을 따라 굽은 길은 여러 갈래로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는데 꾸불꾸불한 노송의 그늘에 고색 짙은 정자가 줄을 섰다. 세월의 때가 묻은 기와지붕은 희끗희끗하게 빛이 바랬어도 팔작지붕의 추녀가 길게 뻗어 날아갈 듯 날렵하여 행차하는 임금의 연이 잠시 내려앉은 듯 산뜻한 정자인 ‘가선정’이 앞에 섰다. 난간을 두른 2층 누각은 고고한 옛 멋을 그림같이 풍기는데 봉황의 머리를 얹은 익공포가 둥지를 박차고 비상을 하려는 듯 맵시도 정교하다. 오르는 계단은 누마루 밑에 있어 갓을 쓰고 오르내리면서 몸가짐을 가벼이 말라는 숨은 뜻을 담았을까. 머리를 깊게 숙여 누마루로 오르니 사방이 숲으로 둘러쳐져 세상사를 가려 준다. 바람소리가 들리면 물소리가 멈춰주고 물소리가 들리면 바람소리가 멈춰주니 내 잘났다고 다툼질하는 작금의 바깥세상이 민망스러워지는 것은 갈천 임훈선생의 유훈이 깃들어서 일까. 일상이 버거워서 고단한 이도, 세상사에 부대끼어 마음을 다친 이도, ‘가선정’에 오르라고 권하고 싶어지는 평온하고 아늑한 정자이다.

‘가산정’ 뒤에는 사당과 ‘경모재’를 후원에 둔 ‘도계정’이 한 개의 방을 가운데에 두고 사면으로 마루청을 깔고 계자난간을 두른 2층 누각으로 절제된 선비의 근엄한 풍모로 당당하게 우뚝 섰고 그 뒤로는 별당 후원의 정자 같이 아리따운 여인의 청순한 자태를 빼어 닮은 아담한 ‘병암정’이 다소곳하게 자리를 잡았다. 오르는 정자마다 정감이 다르고 바라보는 운치도 서로가 달라서 발길을 돌리기가 못내 아쉬웠다.

숲을 나와서 갈천 임훈 선생과 아우 첨모당 임운선생의 고택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도로가에 자리 잡은 맞배지붕의 정려각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갈천선생과 첨모당께서 생전에 받은 효자 정려로 효자비 2기와 그 후손의 효자와 열녀비로 여섯 기가 나란하게 섰다. 숙연히 옷깃을 여미고 고개를 숙여 경배의 예를 가름하고 인접한 ‘서간소루’로 들어섰다.

‘서간소루’는 첨모당 임운선생의 세가로 아들인 서간선생이 호를 당호로 삼고 강학을 하던 고택으로 갈천선생의 고택과 담장을 사이에 두었는데 효자정려의 홍살대문이 각각으로 우뚝 서 만대불후 영예롭다.

안으로 들어서면 단청을 입힌 사당과 두 분 선생의 문집 책판이 보관된 판각이 있는 특이함 말고는 사대부가의 위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사랑채나 안채가 웅장하지 않아 위압감이 없어 괜스레 긴장하지 않아도 좋은 그저 여염집 같은데 검소함과 절제된 소박함이 묻어나서 어린 시절 외갓집에 온 것 같이 온화하고 푸근하여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갈천서당


고택에서 저만치 떨어진 들녘 가운데에 자리 잡은 ‘갈천서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솟을대문이 우뚝한 갈천서당은 맞배지붕의 다섯 칸짜리의 널따란 건물이다. 강학의 마루청에 올라 좌정을 하고 조선조 6현신의 한분으로 언양현감과 광주목사 그리고 사직서참봉 등 두루 요직을 거치시고 이조판서로 추증되신 효간공 갈천 임훈선생께서 “정심수신(正心修身)하시라고 군왕께도 간언하신 유훈을 되새기니 정치는 뒷전이고 눈치에만 전념하는 오늘의 정치사에 탄식이 절로 난다.

내친김에 풍경소리로 마음을 달래고 죽비소리에 몸가짐을 고칠까 하고 노송 우거진 심산계곡의 천년고찰 송계사로 발길을 옮겼다.

갈천서당에서 송계사까지는 4km 남짓한데 갈계리 삼층석탑이 탑불마을 앞에서 길마중을 나와 섰고 ‘관석’이라고 음각된 커다란 모자바위는 벼슬을 주겠노라며 머리를 숙이라 하고 건너편 ‘농은정’은 쉬어가라며 옷소매를 붙잡는다.

송계사로 가는 1001번 산길도로는 37번 도로와 만나서 영호남을 잇는 고제면의 ‘빼재’인 신풍령을 넘어서 무주로 이어지는 길이다. 고갯길 초입에서 송계사 길로 들어서서 국립공원관리소 앞에 차를 세웠다. 송계사까지는 찻길이 나 있으니 1km가 안된다하여 계곡의 풍광을 즐기며 걷기로 했다.


청풍은 노송의 가지 끝에 노닐고
송계사 계곡물은 반석위에 노니는데
백운은 창공에서 저마다 무심하니
산새를 벗을 삼고 객이 홀로 걷는구나.


계곡을 따라 비탈진 산길을 한참을 오르자 자그마한 돌확에 석간수가 넘치는데 ‘간천약수’라고 바윗돌에 새겨져 있어 마련된 쪽박으로 한 바가지를 떴다. 차갑지도 않고 부드럽기만 한데 땀이 밴 전신이 한결 시원해졌다. 약수터에 근접하여 장독만한 두 기의 부도가 나란하게 섰는데 강희 57년으로 삼백년 세월을 일러 주건만 더는 알 수가 없단다. 작은 주차장을 마련한 앞으로 일주문도 아니고 천왕문도 아닌 범종이 걸린 나무대문을 들어서자 좁다란 마당을 깔고 단청이 고운 극락보전과 종무소 간판이 붙은 요사 사이로 화강암 돌계단 위에 대웅전이 우뚝 섰고, 뒤로는 꽤나 높은 비탈 위에 작은 전각의 삼성각이 자리를 잡은 남덕유산 깊은 골의 작은 산사이다. 생 미나리 한 묶음과 당근 한 뿌리에 오이 하나가 차려져 있는 불단에 향불을 지펴 예를 올리고 삼성각을 나서니 뻐꾸기의 애끓는 울음소리가 송계사 깊은 골을 정적으로 물들인다.


 
송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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