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여수 하화도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여수 하화도
  • 경남일보
  • 승인 2015.07.19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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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에 싸인 꽃섬, 황홀한 동화속 나들이
▲ 친환경적으로 꾸며놓은 구절초공원 표지판


◇동화 속 환상의 섬, ‘아래꽃섬’을 그리다


깊은 절망의 나락에서 운명처럼 만난 세 명의 여자가 자아를 찾아 떠나는 로드무비, 자신이 낳은 아기를 화장실에서 버린 17살 혜나, 뮤지컬 가수로서 전성기를 보내다 후두암 진단을 받은 20대 유진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매춘을 시작한 30대 주희. 세상의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나는 여행, 그 여정에서 만난 세 여인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가슴 깊이 긁힌 상처를 어루만지며 마침내 자신을 버린 세상과 화해해 나간다. 절망의 늪에 빠져있을 때, ‘상처와 아픔의 공유’를 통해 현실을 극복하려고 한 동화같은 이야기, 그 이야기가 닿은 곳이 바로 10여 년 전에 본 영화 ‘꽃섬’(송일곤 감독)이다. ‘건강 하나 행복 둘’ 걷기클럽에서 동화같이 아름다운 힐링영화 ‘꽃섬’의 배경무대였던 ‘아래꽃섬’으로 걷기 힐링을 간다는 말을 듣고 설렐 수밖에 없었다. 영화의 서정성 짙은 장면 하나하나가 뇌리에 스치면서 치유와 안식처, 재생의 공간으로 선택한 이상향으로서의 꽃섬인 ‘하화도’, 그 동안 꿈처럼 닿고 싶어했던 하화도를 네 번째 ‘스트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으로 마련했다.

 

▲ 길섶에 함초롬히 핀 각시붓꽃들


◇위안과 안식의 공간으로서의 꽃섬

비 소식 때문일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새벽 빗소리에 선잠을 깼다. 하필이면 꽃섬 하화도 걷기 힐링을 떠나는 날 비가 왔다. 7시 30분에 버스 두 대로 출발하여 9시 30분에 백야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10시 30분 따로 마련된 도선을 이용해 동화 속의 공간이면서 영화 속의 세 여인이 안식처로 찾은 오로빌인 꽃섬, ‘하화도’에 도착했다. 운무에 가린 하화도가 마치 동화 속의 섬처럼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출발할 때, 비 때문에 섬과 꽃 구경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은 단번에 빗나갔다. 비가 오히려 탐방객들의 마음을 몽환적인 분위기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 가면 더 좋은 하화도, 특히 비가 오고 섬 전체가 운무에 싸인 날은 더불어 걷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서로의 내면끼리 소통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내뱉기 어려운 크고작은 아픔이 스펀지에 물 스미듯 운무에 빨려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빗속을 걷는 사람도 꽃이 되는 하화도

여수시 화정면에 속한 하화도 꽃섬길은 총 5.7km로, 하화도의 지형이 여성들의 굽 높은 구두나 복조리를 닮았다. 임진왜란 때 뗏목을 타고 피난하던 안동 장씨가 동백꽃과 진달래꽃이 활짝 핀 것을 보고 첫발을 들여 정착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꽃섬’이라 불리게 된 것도 꽃이 많아서라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전선을 타고 가다가 흐드러진 꽃을 보고 ‘꽃섬’이라 이름 붙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 자연미를 잘 살려 꾸며놓은 하화도 꽃섬길



섬에 당도한 일행은 가방을 마을 회관에 맡기고 꽃섬 탐방에 나섰다. 꽃섬길은 마을에서 해안을 따라 나 있었는데 맨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유채꽃이었다. 온통 유채꽃으로 덮인 해안길을 지나니 큰굴삼거리가 나왔다. 깎아지른 절벽과 절벽 사이로 뿌연 연무를 입에 문 파도가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자리에 큰 굴 하나가 신비감을 보태주고 있었다. 섬의 오른편 끝자락인 막산에 오르니 바다 풍경과 섬의 절경을 탐방객들에게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운무가 더욱 짙게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낭떠러지와 운무 건너 상상 속에 떠 있는 섬과 바다, 오히려 동화적인 신비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꽃섬길은 섬의 뒤편 벼랑을 따라 깻넘전망대와 큰산전망대, 순넘밭넘 구절초공원으로 이어지는데, ‘깻넘’은 깨밭으로 가기 위해 넘던 작은 고개라는 뜻이고, ‘순넘밭넘’은 순(사람이름)의 밭이 있던 작은 고개를 가리키는 것으로 무척 인상적이었다. 구절초가 많이 심어져 있는 구절초공원은 가을이면 한껏 그 이름을 뽐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길섶에는 줄딸기꽃, 각시붓꽃, 금낭화, 양지꽃, 제비꽃, 개별꽃, 장다리꽃, 영산홍 등 갖가지 봄꽃들이 탐방객들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길섶에 서서 한참이나 함초롬히 비에 젖은 작고 이뿐 꽃잎들을 바라보니 한층 더 맑고 예뻐 보였다. 그리고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행렬 또한 송이송이 하나의 꽃처럼 보였다. 아, 꽃섬에 오면 모두가 꽃이 되고, 사람도 섬이 되는가 보다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천천히 꽃을 감상하면서 하화도 꽃길을 한 바퀴 걸어도 두 시간 반이면 충분했다. 빗속에서 꽃과 운무, 그리고 벼랑과 수줍은 듯 희미하게 드러내는 섬들의 이마를 보면서 걷는 자체가 어쩌면 일상에서 벗어나 동화적이고 몽환적인 세계 속에서 걷는 느낌을 갖게 했다. 주황색 지붕으로 덮인 하화도 마을에는 대학생들이 그린 소박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마을 사람들도 꽃처럼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듯 따뜻했다.

 

▲ 해변과 잘 어우러진 유채꽃 길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의 ‘풀꽃’-

 

◇내 마음의 오로빌, 아래꽃섬

동화적 서정이 짙은 영화 제목인 ‘꽃섬’은 현실적인 지명으로서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세 여인의 슬픔과 고통,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만들어 낸 판타지의 공간일지도 모른다. 우리들 가슴 속에 자리한 이러한 공간들이 현실의 고통을 뛰어넘게 하는 활력소가 될 수도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돈 욕심, 자식 걱정, 사랑의 아픔만 안고 하루하루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재미없는 세상이 될 것인가? 우리들 마음 속에 ‘꽃섬’과 같은 판타지의 공간, 즉 오로빌이 존재함으로써 고해(苦海)와 같은 현실을 넉넉히 건너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고해와 같은 세상’을 ‘희망으로 바꾸어 넉넉히 건너가는 힘’ 이 곧 힐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번 하화도 힐링여행은 힘든 세상을 넉넉히 건너게 하는 큰 활력소를 불어넣어주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박종현 시인

 

 
주황색 지붕으로 된 하화 마을의 집들

 
하화 마을 앞에서 찍은 걷기동호회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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