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못난 정치, 못난 정부, 그리고 못난 나라
[경일시론] 못난 정치, 못난 정부, 그리고 못난 나라
  • 정영효
  • 승인 2015.07.19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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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효 (논설위원)
1995년 4월. 삼성 이건희 회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국내 언론사 베이징 주재 특파원과의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우리나라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정부)은 3류, 기업은 2류다”라고 한 발언이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든 적이 있었다. 국내는 물론 세계 흐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 회장의 발언이었기에 국민에게 주었던 충격의 강도가 더 컸던 것 같다. 당시 국민들은 이 회장의 발언에 공감하며, 자성과 함께 못난 정치와 정부의 자각을 요구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이 회장의 발언에 대한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한바탕 소동을 벌였고, 정치권은 개선책 및 대책을 찾기보다는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2년 후 대한민국은 IMF를 맞았다. 참으로 못난 정부, 못난 정치였다.

그로부터 20년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몇 류일까’하고 화두를 던져 본다. 이 회장이 던졌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화두에 대해 ‘그때보다 나아졌다’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다는 게 맞을 것이다. 당시 ‘4류’라는 혹평을 받았던 정치를 보자. 그때도 그러했듯이 지금도 국회에는 막말과 거짓말이 난무하고, 여야 간에 싸움만이 있을 뿐이다. 정당은 더 한심하다. 여당은 친박·비박으로 나눠 권력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꼴사납다. 야당도 친노·비노로 갈려 당권 쟁탈싸움에만 골몰이다. 국익과 국민의 삶엔 전혀 관심이 없다. 대한민국 정치는 20년보다 오히려 더 퇴보했다. 5류·6류 정치꾼들이 더 득실거린다. 정당정치라는 말 자체가 부끄럽다.

‘3류’ 평가를 받았던 정부(관료와 행정조직) 또한 지금 국민으로부터 더 나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국민적 신뢰도는 당시보다 지금이 더 추락한 것 같다. 세월호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처역량은 실망 그 자체였다. 최악의 내수경제는 회복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서민의 빚은 20년 전보다 더 늘어났고, 청년은 취업할 곳을 못찾아 방황하고, 직장에서 쫓겨난 근로자들은 재취업길이 막막하다. 국민 삶의 지수에 빨간불이 곳곳에 켜져 있는데 정부의 신호등은 작동불능이다.

20년 전 다소 나은 평가가 내려졌던 기업에게 지금도 ‘2류’라는 성적을 매길 수 있을까. 국민들은 ‘글쎄’라고 답할 것 같다. 기술·경영·규모 등 전반적인 부문에서 대한민국 기업의 국제 경쟁력이 낮아지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갈등구조도 더 심화되고 있다. 당시 세계 1위였던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지금 국제시장에서 도태될 위기에 놓여 있고, 반도체·자동차·전자 등 핵심 주력산업들도 언제 추락할지 불안하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앞다퉈 ‘기업의 1류화’를 선언하고 있지만 ‘1류’ 문턱을 넘었다고 성적을 매기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지금 이건희 회장에게 대한민국을 다시 평가하라고 하면 어떤 점수를 내놓을 지 궁금하다.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평가를 내리거나 더 낮은 점수를 줄 것 같다. 국민의 평가 또한 낮으면 낮았지 20년 전 평가보다 더 높은 점수를 줄 것 같지 않다. 정치는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정부의 국정 능력 또한 국민에게 실망만 주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못난 정치에 못난 정부가 함께하고 있는 못난 나라다. 내년 4월 총선이 실시된다. 못난 정치를 청산할 수 있는 기회다. 못난 국회의원을 뽑는 못난 국민이 되지 않아야 한다. 잘난 정치에 잘난 정부, ‘잘난 나라’에 사는 ‘잘난 국민’이 됐으면 한다.

 
정영효 (논설위원) 경일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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