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칼럼] 욕의 경제학, 유머의 경제학
[의정칼럼] 욕의 경제학, 유머의 경제학
  • 경남일보
  • 승인 2015.07.1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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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인 (창원시의회 경제복지문화여성위원장)
길을 가다 우연히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세 명의 대화를 엿듣게 됐다. 그들의 대화는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났고 지나는 사람들이야 어쩌건 간에 큰소리로 떠들기 일쑤였고, 침을 뱉는 모습이 마치 몸에 밴 습관 같았다. 토막단신 한 대목이 떠오른다. 70대 할머니가 시내버스에서 곁에 앉은 고교생들의 대화를 듣게 됐다. 그들은 학교 이야기를 하면서 욕은 한마디도 쓰지 않고 건전한 대화만 오갔다. 이를 지켜 본 할머니는 이 학교에 감사편지를 보냈다. “욕이 안 들어가고는 대화가 안 되는 아이들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세상에 이 학생들을 보니 흐뭇했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학교는 다섯 학생을 찾아내 모범상을 줬다. 욕을 하지 않은 것이 선행이자 표창감이 되는 웃지 못할 세상이다.

요즘 아이들은 친밀도의 의미로 욕을 한다. 서로 심한 욕을 해댈수록 친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욕설은 이미 청소년들의 계급문화의 상징이 돼 버렸다. 누가 더 강한 욕설을 하는가, 누가 위협적인가에 따라 그들의 상하문화는 결정돼 버린다. 특히 SNS 속 비속어는 도저히 수위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위험수위에 도달했다.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은 무분별한 악성 댓글과 대상에게 가슴 속 생채기를 남기는 ‘욕설의 바다’가 된 지 오래이다. 그로 인한 연예인들의 빈번한 자살사건과 악성 댓글을 견디다 못한 그들의 악플러를 상대로 한 소송도 빈번하다.

영화나 TV도 욕설로 넘쳐나기는 마찬가지다. 2014년 초에 있었던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의 행간을 보더라도 그 잔혹함에선 폭력영화 속 그것과 다르지 않다. 소위 돈이 된다 싶으면 우르르 몰려들어 붕어빵 찍어내듯 만들어내던 폭력영화는 그 치졸한 완성도에서 보는 이에게 수치심을 유발하지만 인간 본성의 악한 기운은 여지없이 일상에서 발현된다. 우리 국회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일삼는 정쟁 속에 위민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재선에 나선 로널드 레이건은 73세의 고령이었다. 토론 때마다 53세의 월터 먼데일은 레이건의 나이를 걸고 넘어졌다. 그러자 레이건은 “나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너무 젊고 경험이 없다는 걸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는 단 한 번의 유머로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바꿔 재선에 성공한다. 영국의회는 의원 사이의 금언을 정해 놓았다. 바보, 위선자, 반역자, 비겁자 등 이런 말을 사용하면 의장은 직권으로 해당의원을 퇴장시킨다.

정호승시인의 ‘벗에게 부탁함’은 아름답고 우정 어린 욕이 어떤 건지 일러준다. ‘벗이여/이제 나를 욕하더라도/올 봄에는/저 새 같은 놈/저 나무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봄비가 내리고/먼 산에 진달래가 만발하면/벗이여/저 꽃 같은 놈/저 봄비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나는 때때로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꽃 같은 놈이 되고 싶다.’ 따지고 보면 욕을 한 사람은 욕을 먹은 사람보다 훨씬 큰 상처를 입는다. 스스로의 낮고 천한 품격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상인 (창원시의회 경제복지문화여성위원장) 의정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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