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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플러스 <122>미타산발길 드문 희미한 등산로 따라 원시숲속으로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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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24  09: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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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고찰 유학사.

의령은 자굴산과 한우산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산이 별로 없다. 그래서 도내에서 산이 별로 없는 지역을 의령으로 꼽는다. 거기에 미타산이 있다.

서방 극락정토에 산다는 아미타불의 ‘미타’에서 왔다는 산 이름이 의미 있게 들린다. 1300년 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고찰 유학사도 끌린다. 고려 무인시대, 반역의 아이콘으로 칼 사위에 부침했던 이의민은 종국에 미타산에서 죽었다.

묵방, 옻공, 달밭은 이 산에 등을 붙이고 사는 작은 마을이다. 옻공(칠공)은 옻을 바치는 마을, 묵방은 고요하고 아늑한 마을, 달밭은 달빛에 달그림자 내려앉는 마을이다. 지금 옻공은 절로 바뀌었고 묵방은 3가구, 달밭은 7∼8가구가 산다.

하지만 산행 중엔 등산로가 희미하고 안내판이나 이정표가 별로 없어 길을 잃거나 벌 쏘임 등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해 여간 고생을 한 게 아니다. 약이 잔뜩 오른 왕벌집을 자극하는 바람에 수 십마리의 벌이 분수처럼 허공을 날았다.

그런 중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닿지 않은 산 속에 은밀하게 숨어 있는 이름없는 비밀의 늪을 만나고 치렁치렁 장애 없이 자라는 넝쿨식물의 원시 숲을 목격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 하늘열매 으름.


▲미타산(663m)은 의령 동부지역의 부림면 묵방리와 합천군 적중면 경계에 있다. 고도가 비슷한 인근의 천황산과 국사봉으로 연결된다. 2012년 등산로를 정비했다고 하나 선명치 않아 등산객이 길을 잃어 애를 먹는 곳이다. 특히 묵방마을과 미타산 구간이 그렇다.

▲오전 9시 20분, 유학사 주차장에서 출발한다. 쉽고 편하게 오르려면 물길 건너 유학사로 가지 말고 곧장 임도 쪽으로 오르면 된다.

취재팀은 유학사 방향을 택했다. 돌계단을 올라 오른쪽 마당에 요사채, 왼쪽에 만세루, 중앙에 오층석탑, 극락전, 그 왼쪽에 범종각이 있다. 극락전 뒤로 칠성각 용왕각까지 있다. 여승이 거처한다는 소릴 들었으나 절은 조용했다. 천년 고찰이라는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인기척이 없었다.

유학사(留鶴寺)는 660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미타사(彌陀)터에다가 훗날 무학대사가 다시 지어 창건시기를 거슬러 1300년 전으로 본다.

 

   
▲ 묵방


임도를 따라 산중 묵방마을로 향한다. 시멘트로 포장해 차량이 다니지만 수 년전만 해도 이곳은 하늘만 빼꼼이 열린 경남의 오지였다. 오지의 흔적? 이 마을어귀에서 줄기에 달린 귀한 ‘으름’을 볼 수 있었다. 머루 다래와 함께 우리나라 산중에 지천이었으나 최근에는 사라지고 있는 존재다. 토종 바나나로 부르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 종이다. 봄에 자주색 꽃이 피고 가을에 보랏빛 열매가 익어 우윳빛 속살을 드러낸다. 신맛이 나지만 익으면 달다. ‘목통’(木通)이라고 부른다.

오전 9시 47분, 2km정도 올랐을까. 묵방마을 기와집과 슬레이트지붕이 보인다. 2004년 ‘범죄 없는 마을’로 지정됐다. ‘산 중에 도둑질 하러 오다가 지쳐서 포기했을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법하다. ‘먹뱅이’로 불렀는데 고요한 마을이라는 의미다. 10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세 가구만이 염소와 닭을 키우거나 밭농사로 연명한다.

정자쉼터를 지나 상수도 탱크 앞으로 오른다. 등산로는 처음부터 희미했다. 오감을 동원해 되찾은 등산로는 이내 사라졌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골짝을 건너면서 길 찾기를 두 세 차례. 성가신 등산이 계속됐다.

오전 10시 3분, 인기척에 놀라 개구리가 일제히 물 속으로 다이빙하는 산상 늪지대. 주변에는 하늘을 덮을 정도로 넝쿨식물이 울창하다. 가장자리에 산돼지가 펄 목욕을 한 진흙이 뒤집어져 있고 고라니 등 산짐승이 물마시러 오는 길도 선명하다.

감상도 잠시, 숲의 정적을 깨는 소란이 일었다. 휴식을 위해 앉았던 곳에 수 십마리의 왕벌이 미친 듯이 날더니 뒤따르던 산우를 집중 공격했다. 쏘인 곳에 물파스를 발랐지만 팔 전체가 순식간에 부어올랐다.

 

   
▲ 비밀의 늪


오전 11시, 무덤이 있는 능선에서 등산로에 다시 합류할 수 있었다.

안부에 내려선 뒤 낮 12시, 다시 치올라 만난 너럭바위. 전망대 역할을 하는 곳으로 발 아래가 허광하다. 그 위로 송전철로가 눈에 거슬린다.

정상 못미쳐 마을 돌담처럼 보이는 것이 미타산성이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올라왔던 힘든 여정을 한꺼번에 보상해주고도 남을 산상 고원길이 열린다.

산성은 삼국시대 축성한 것으로 김유신 장군이 이곳에서 백제군과 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인근 상사덤은 마을 처녀가 상사병에 떨어져 죽었다는 바위더미다.

낮 12시 30분, 정상에 도착한다. 봉수대가 있어 봉화산 또는 방아산이라고도 불렀다. 흔적으로 보이는 일부 봉화터도 있다. 옛날 산에 오른 한 노인이 미타산 봉화지기에게 하룻밤 유하기를 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심성이 고약해, 맑은 우물이 아까우니 흙물을 먹어라”며 악담하고 사라졌다. 그가 떠난 후 실제 물이 탁해졌고 현재까지 미타산 물이 흐려 있는 이유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거절한 봉화지기보다 흙탕물로 분탕질한 노인이 더 고약하다. 요즘 같으면 보복했다고 철창신세 질 노인이다.

 

   
▲ 미타산으로 오르는 숲길. 메인
   
▲ 벌과 산수국


서쪽에 천황산 국사봉 대암산 황매산 줄기가 확연하고, 동쪽에 화왕산, 북동쪽에 대구 달성 비슬산까지 하늘 금을 그린다. 맑은 날은 부산 금정산 고당봉까지 조망된다.

팔각정자를 지나 내려서면 토굴로 불리는 암자가 있다. 스님은 “밭에 채소를 기르거나 오가는 사람들의 은혜로 먹고 산다”고 했다. 그 아래 민가에 할머니가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하산 길은 임도가 개설돼 있다. 암자 앞에 세워져 있던 지프가 오가는 길이다. 미타산 등산객도 주로 이 길을 이용한다.

오후 3시, 불관사는 10여 년 전에 지은 사찰로 묵방 분교가 있던 곳. 약수로 불리는 용천샘이 있다.

불관사 지나 백화사 못 미친 지점에서 신경을 써야 한다. 이곳에서 왼쪽 길로 내려서 유학사 주차장으로 가야 한다.

자칫 길을 잃을 수 있는 구간이니 주의가 필요하다. 곧 오른쪽 폐가 쪽으로 내려간다. 대나무 숲을 지나 또 다른 폐가 옆으로 길을 찾아야 한다.

불관사에서 유학사로 가지 않고 그냥 직진해 시멘트 도로를 따라가면 옻공재, 달밭마을, 1시간 정도 더 내려가면 부림면소재지다. 원점회귀 산행객이 유학사로 내려서지 않고 무심코 지나치게 되면 부림면까지 한 시간 이상을 걸어야 한다.

달밭마을은 솥단지 같은 지형에 앉은 평화로운 마을이다. 맞은편 언저리 먼당에 휘어진 재를 통해 사람소식 봄소식을 듣는다. 가을 밤 마을 뒤편 언덕엔 귀뚜라미가 길게 울고, 희고 노란 달빛이 내려앉는 마을이다.

 

   
▲ 미타산


고려 무인정권기 세력가 이의민은 미타산성에서 죽었다. 8척 거구에 힘이 장사였던 그는 맨손 무예를 잘해 의종에 눈에 띄어 출세가도를 달렸다. 별장 중랑장 상장군까지 올랐으나 자신을 총애한 의종의 척수를 부러뜨려 죽이는 반역을 한다. 반역의 공으로 대장군까지 승진하고 최고권력을 쥐게 되나 결국 그도 칼에 스러진다. 1196년 최충수와의 비둘기사건이 빌미가 돼 그의 형 최충헌에 쫓기는 신세가 돼 미타산별장에 숨어들었다가 이들에 의해 축출된다. 미타산별장이 유학사인지는 알 수 없다. 유학사 회귀까지 휴식 포함 6시간이 걸렸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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