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 “종이학의 의미”
[경일칼럼] “종이학의 의미”
  • 경남일보
  • 승인 2015.07.26 15: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바램 (창원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일본 나가사키시를 처음 방문한 것은 1996년 우리대학 학생과 나가사키 대학 학생 간의 교류전 지도교수로 참여한 것에서 시작됐다. 그때 나가사키 시내관광을 하게 됐는데 가장 많이 눈에 띈 것은 ‘종이학’이었다. 일본인의 독특한 문화생활의 일부라고 여기고 지나쳤다. 그후 19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 그때의 ‘무관심 행위’가 무지한 부끄러움이 돼버렸다. 사실 종이학의 의미는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처음으로 종이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뉴욕에 일어난 9·11테러 사건이었다. 나가사키시, 미국 뉴욕시의 사건사고는 겉모습으로는 다르나 내면의 모습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됐고, 한국인 또한 벗어날 수 없는 동질의 의식이 잠재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년 뉴욕시의 초청을 받았다. WooRi 단체는 초청특별전 전시목적과 주제를 ‘위안부’로 설정해 ‘위안부 비’, ‘6·25참전 용사 기념비’를 방문하게 됐는데, 이때는 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관심이었다고 본다. 종이학에 대해 알기 시작한 계기는 2001년 9월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이 일어났던 현장을 다녀오고 난 후부터다. 세계무역센터 붕괴 후 미국은 그 장소에 다시 건물을 지었다. 재건된 건물은 9·11 추모박물관으로 재탄생돼 겉모습은 마치 잘 비치는 유리종이 한 장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박물관 내에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의 현장모습을 그대로 보존·전시돼 있는 점인데, 사건 당시의 파편이나 타다 남은 종이, 심지어 사망자의 안경 등을 그대로 보여주며 보는 이의 현실적인 감각을 자극했다. 박물관의 겉모습은 당시의 건물보다 훨씬 아름답고 가치 있는 예술품이 돼 세계인을 유혹하면서 박물관 내부의 모습은 9·11테러 사건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했다. 나가사키시에 있는 평화공원의 수많은 종이학도 이러한 의미와 흡사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데, 나가사키 원폭 희생자의 추모, 9·11테러 희생자의 추모 모두 ‘기억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한국인은 이 두 사건 모두 무관한 것일까. 9·11테러 때도 한국인이 희생됐고, 조선 징용 노무자들의 원폭피해자는 약 7만 명이며 그 후손들은 지금도 이름 모를 병으로 고통 속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인의 피폭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미미한 실정이다. 물론 최근 들어 민간단체의 활발한 움직임은 있으나 정부차원의 세계적인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일본은 정부차원의 전문병원 설립과 정기검진으로 피폭자 건강관리를 해오고 있으며, 특별수당 지급, 특별조치에 대한 법률제정을 한 상태이다. 그리고 평화공원, 추모공원, 위령비 등을 세우고 매년 각종 추모제로 세계에 알리고 있다. 이때 사용되는 매개체인 종이학은 큰 의미를 가진다. 즉 종이학은 ‘평화를 위한 염원’인 것이며 ‘절대적 기억의 상징’ 메시지인 것이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된다. 우리에게도 잊어서는 안 될 많은 사건들이 있다. 선택의 여지없이 희생된 사람들의 비통한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려 후세에 기억되게 함으로써 인류의 경계를 삼아야 할 것이다.

 
강바램 (창원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경일칼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