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위식의 발길닿는대로 (70) 월성계곡을 찾아가며
윤위식의 발길닿는대로 (70) 월성계곡을 찾아가며
  • 경남일보
  • 승인 2015.07.2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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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에 홀로 선 천년 석불은 무슨 사연이었을까
 
 
근심걱정은 사노라면 마련이지만 IT시대로 접어들고부터는 전에 없던 도용이니 해킹이니 하며 머릿속을 헤집는데 허접쓰레기 같은 자잘한 것들까지도 아예 머릿속에다 ‘스트레스’라는 간판을 걸고 주상복합으로 살림을 차린다. 집착이나 탐욕이야 사서 버는 고통이라지만 최소한의 갖춤이야 필연적인데 듣기 좋은 소리로 무념무상이고 무소유지 정작으로 무념무상하면 급변하는 시대에 속절없이 왕따 되고 무소유 했다가는 쪽박 차기 십상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밀려오는 변화에 일일이 대응하며 이리저리 부대끼다보면 인성이 황폐 해질 수 있어 때때로 일상을 접고 가까운 산이나 바다를 찾아 바람이라도 쐴 요량으로 집을 나선다.

아침부터 후텁지근하고 희뿌연 안개가 걷힐 것 같지 않아 먼 곳의 풍광에 시름 전송하기는 마땅찮은 날씨이고 ‘웰빙’이니 ‘힐링’이니 하며 까불댈 주제도 아닌 판국이라서 가는 길에 종아리를 걷을 작정을 하고 마음에다 회초리를 한가득 품고 길을 나섰다.

거창군 위천면 소재지인 장기리 들머리에서 수승대로 가는 길과 갈라서서 좌측으로 접어들어 위천면사무소 앞을 지나 위천초등학교 뒤에서 언덕배기로 오르는 길로 올라서면 널따란 들녘이 펼쳐지며 빤하게 금원산의 북동쪽 끝자락을 깔고 강동마을이 길게 자리를 잡았는데 솟을대문을 나란히 한 고택이 첫눈에 들어 온다.
 
동계 정온선생의 종택과 정온선생의 후손 야옹 정기필선생의 고택인 반구헌이다.

대궐같이 웅장하지도 않고 호화스럽지도 않은 사대부가의 옛 모습인 고택이지만 지나는 길이면 언제나 들려서 두 분 선생의 유훈을 되새기며 두고두고 돌아볼 교훈이 있어 성찰의 훈시를 듣는 것 같아 경배의 예가 절로 우러나서 숙연히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곳이다.

‘문강공동계정온지문’이라는 정려홍패가 붙은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ㄱ’자형의 행랑채가 난간을 두른 일반적인 형태지만 누마루 위의 지붕이 눈썹지붕이라 하여 2중으로 되어 있어 좀체 보기 드문 건축양식이다. 위압감이 없이 소박하면서 절제된 선비의 근엄함이 권세의 위용이나 부귀영화의 호사를 삼가고 간결하고 반듯하여 옛 멋의 기품이 은은하게 배였다. ‘충신당’이라는 편액이 붙은 마루청에 걸터앉으면 까마득한 시간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영창대군도 죽이고 인목대비까지 폐출한다면 이런 패륜을 저지르고 죽어서 종묘의 선왕들을 무슨 낯으로 볼 것이냐고 극언의 상소를 하셨으니 이는 광해군과 정면으로 맞선 것이 아니옵니까? 멸문지화가 불을 보듯 빤 한데 정녕 어쩌실 요량이셨습니까?’ 답이 없어도 국민들을 술렁이게 했던 ‘배신의 정치’를 아뢰고 종아리를 걷으려고 했는데 문 위에 붙은 ‘충신당’이라는 당호의 현판이 추사 김정희 선생을 떠올리게 한다. 200년 세월이 흐른 후에 동계선생의 10년 유배지인 제주도의 같은 장소에서 9년간의 유배 끝에 풀려난 추사선생께서, 귀향길을 수 백리나 돌아서 이곳까지 찾아와 쓰신 친필의 당호인데 원판은 박물관에 보존되고 복제품이지만 동계선생의 충절과 학덕을 찬양한 추사선생의 체취가 묻어나는 현판이다. 뿐만 아니라 모와(某窩)라는 현판은 조선왕조의 끝머리에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의친왕 이강공이 찾아와 선생을 기리며 남긴 친필이다. 섬돌로 내려서서 고개를 숙여 경배의 예를 가름하고 담장을 사이에 둔 반구헌으로 발길을 옮겼다.

 
 

문간방이 딸린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난간을 두른 누마루에 정자방을 갖춘 5칸 팔작지붕의 꽤나 큼직한 기와집이지만 꾸밈이라고는 어디에도 없고 엄격하게 절제된 소박한 고택이다. 야옹 정기필선생께서 영양현감을 지내고 고향으로 왔으나 거처조차 마련하지 못하여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안의 현감의 도움으로 마련한 처소인데 스스로 뒤돌아보고 반성한다는 뜻으로 ‘반구헌’이란 당호를 붙였다니 녹봉까지도 구흘에 쓰며 청렴하고 청빈한 선생께서 무엇을 더 돌아보고 반성하신다는 것인가. 무슨 게이트니 무슨 리스트니 하며 수십 수억 원을 희롱하는 오늘의 세태가 부끄럽고 민망하다. 안채를 복원하는 공사가 한창인데 안마당의 우물은 변함없는 수량으로 옛 주인을 기다리고 금원산 깊은 골엔 무덕무덕 안개가 피어오르니 성현들의 강림일까 천상으로 회귀일까.

반구헌을 나와 월성계곡을 향해 야트막한 말목고개를 넘어서자 작은 주차장을 마련하고 보물 제1436호라며 농산리 석조여래불입상의 안내판이 섰다.

벼가 무성한 논두렁의 가장자리 끝으로 난 질퍽거리는 자드락길을 따라 오르자 하늘 높이 치솟은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좁다랗게 초원을 깔고 하얗게 빛이 바랜 석불이 외롭게 홀로 섰다. 이목구비가 완전하고 법의의 치렁거리는 주름까지 선명한 여래불입상이 전신의 광배까지 하나의 돌에 조각되었는데 굴곡의 사실적 표현이 섬세하여 빼어난 몸매에 생동감이 감돈다. 오른쪽 어깨위의 광배가 조금 떨어져 나갔으나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되었다니 천년을 넘긴 세월이건만 작은 암자의 흔적도 없는 야산의 구릉지인 인적 없는 노천에 홀로 섰으니 무슨 사연이 있어서 일까.

낙락장송 둘러쳐서 천공을 지붕삼고,

소나무 가지 끝에 달을 걸어 불 밝히고,

범종소리 예불소리 솔바람이 대신해도,

사시마지 김 오른 지 천년이 지났는데,

인적 없는 외진 곳에 어쩌자고 홀로 섰나.

홀로 두고 떠나야 하는 애달픈 인연을 뒤로하고 가던 길을 재촉하여 37번 도로와 만나는 삼거리를 코앞에 둔 다리아래 계곡이 월성천이다. 빤하게 건너다보이는 한 무더기의 숲속을 그늘삼고 고래등같은 바위들이 뒤엉켜서 쪽 빛깔의 깊은 소에 뿌리를 박은 ‘지암대’ 위에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은 유적인 고인돌인 지석묘가 웅장한 모습으로 온전하게 남아있어 또 하나의 볼거리다.

지석묘에서 돌아 나와 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이내 강선대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어 다리를 건너서면 커다란 바위 무더기에 ‘강선대’라고 붉은 글씨를 새겼는데 신선들이 하강했던 절경은 석축을 쌓아서 계곡을 정비하고 샛길을 내는 바람에 운치를 잃었는데 건너다보이는 숲속의 물가에는 고색창연한 2층의 누각인 ‘모암정’이 옛 선인을 기다리며 그림같이 앉았다.

강선대 앞 계곡에서 황점마을 앞 계곡까지 10km가 넘는 계곡이라서 서상으로 넘어가는 37번 도로는 어디를 내려서든 반석이 넓고 크고 작은 소가 있어 신선들이 놀던 선경이요 비경이라 할만하다.

하얗게 빛이 바랜 화강암 반석은 밥알을 굴려도 좋을 만치 깨끗하고 비단결 같이 흐르는 물은 말 그대로 청정옥수인데 반석에서 떨어져 내린 물은 크고 작은 소가 되어 깊이에 따라 물빛이 색다르고 물가의 바위들은 하나 같이 웅장한데 기기묘묘한 형상을 하고도 모난 곳 없이 선이 곱고 결이 부드러워 팔베개를 하고 누워볼까 앉아볼가 정겨움이 넘쳐난다.

가마소는 넓고 깊어 물빛도 보석 같고 분설담은 옛 사람들이 눈가루가 흩날리는 것 같다 하여 붙인 이름인데 반석의 끝자락에서 깊은 소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크고 작은 은구슬을 한없이 튕기고 있어 그 빛이 찬란하여 장관이고 달빛아래 신선들이 노닌다는 ‘사선대’는 정녕 누구의 소작인지 절묘한 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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