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플러스 <123>거창 현성산
명산 플러스 <123>거창 현성산
  • 최창민
  • 승인 2015.08.06 07: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선의 손놀림이 세운 듯 바위가 춤추는 황홀경
 
현성산을 장식하는 백색 화강암과 그 틈에서 자라는 수목들 메인


함양 용추계곡으로 들어가면 산이 하늘금을 그리며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 왼쪽 9시 방향 황석산에서 시계방향으로 거망산 금원산 기백산이다. 현성산은 금원산 뒤에 있다.

5개의 산 중 황석산 다음으로 조형성이 뛰어나다. 산의 많은 부분이 백색을 띤 미끈한 화강암반으로 돼 있고 초록 잎이 성성한 붉은 소나무가 조화를 이룬다. 설악산 울산바위에 비견되고 도내 산 모산재와 감암산을 연상케도 한다.

숙련된 최상급의 정원사가 깔끔하게 정리한 느낌이 드는 한국적인 산이다. ‘성스럽고 높다’는 뜻의 거무시, 거무성으로 불린다.

현성산 날머리 지재미골에는 국내 최대크기의 거대한 바위가 있어 인간세상을 압도한다. 그 뒤에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은 바위 속에 은밀하게 숨어 있는 보물. 오래된 불상이지만 인적이 뜸한 바위틈에 있어 방금 새겨 넣은 것처럼 선명하다.

현성산(玄城山)은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에 있는 높이 965m산이다. 금원산에 딸린 산으로 볼수도 있지만 이 산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 있어 독립된 산으로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등산로는 금원산자연휴양림입구 주차장(미폭)→바위 전망대→현성산→서문가바위→지재미골→가섭암지 마애삼존불→문바위→자연휴양림입구주차장. 6.4km에 휴식포함 약 5시간이 소요됐다.



 
국내 최대크기 문바위.


▲9시 30분, 들머리는 금원산 자연휴양림 매표소 200m못 미친 도로변 오른쪽 의성김씨 거창유씨 쌍분이다.

주차할 공간이 별로 없는 것이 흠. 왼쪽에는 미폭이 보인다. 옛날 폭포 위에 있던 암자에서 쌀을 씻는 바람에 폭포수가 부옇게 물들었다 해서 미폭포(米瀑布)로 불린다.

십 수년전 여름 어느 날, 산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한나절 동안 탁족에 곡주 기울이며 미폭 상부에 노닌 적이 있다. 우거진 숲 암반 위에 작은 웅덩이가 있고 알카리 청수가 옥구슬처럼 흘러가는 별천지였다.

육산을 떠나 오름길을 재촉하면 드넓은 화강암 슬랩(평평하고 매끄러운 넓은 바위)이 가로막는다. 위험한 구간이어서 최근 거창군에서 암반 위에 데크를 설치해 안전을 확보해 놓았다. 집채 만한 바위가 얹힌 것도 있고 박힌 것도 있다.

군은 올해 사업비 1억4000만원을 들여, 미폭에서 정상까지 1.7km 구간에 암릉, 경사지 등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위험 구간에 데크계단 데크로드 목재난간 등 안전시설물을 설치했다.



 
오름길에서 만난 소나무.


10시 18분, 수 십개의 가파른 나무계단을 얼마나 올랐을까. 지나온 풍경과 거창 위천면 상천리 들녘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에 선다. 전망대 바로 옆 바위틈에 100년이 넘은 것으로 보이는 붉은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카메라로 구도를 잡아 찍으니 절제미와 여백의 미가 살아나는 한폭의 동양화다. 이런 류의 풍경은 오름길 내내 펼쳐진다. 등산로는 갈라진 바위틈으로 이어지다가도 천길 아래 낭떠러지로 돌아간다.

등산로뿐 아니라 산의 풍경이 모산재와 감암산 못지않다. 낮아도 인근의 거망 기백 금원산을 능가하는 아름다움이다.

11시 33분, 현성산 정상. 장마철 구름과 안개에 가렸던 산야가 일시에 나타났다가 사라기를 반복한다.

정상 벗어나면 곧바로 갈림길. 마애삼존불·문바위로 내려가는 길과 진행해야 할 서문가바위로 가는 길로 나뉜다.

서문가바위까지 600m, 오르내림이 있어도 능선을 타는 재미가 쏠쏠해 그리 힘들지 않다.

이 바위봉에 얽힌 전설이 많다. 지재미골에서 보면 형상이 연꽃잎을 닮아 연화봉이라고도 부른다. 임진왜란 때 한 여인이 서씨와 문씨성을 가진 남자와 피난을 왔다가 아이를 낳았다. 여인은 누구의 아이인지 몰라 두 남자의 성을 모두 따 ‘서문’이라 불렀고 이후 서문가바위가 됐다는 전설이다. 거창군지 향지에는 옛날 원나라에서 공민왕비 노국대장공주를 따라온 이정공 서문기가 감음현 식봉(食封)자격을 얻어 살았는데 그의 자손들이 이 일대에서 공부를 하게 돼 아버지 서문기의 이름을 따 그렇게 불렀다한다.



 
연꽃을 닮은 서문가바위


연화봉을 떠나면 왼쪽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2∼3개가 차례대로 나온다. 모두 지재미골로 가는 길이다. 마지막 갈림길에서 오른쪽은 월봉산으로 간다. 지재미골 하산이 아니라면 5km를 더 걸어 금원산으로 갈수 있다. 금원산은 기백산으로 이어진다.

1시 40분, 취재팀은 지재미골로 내려섰다. 인근에 있었던 지장암에서 유래된 지재미골은 금원산과 현성산을 가르는 분기점.

졸졸 거리던 실개천의 물소리가 고도를 점점 낯추면서 차츰 커져서 개울이 되고 계곡이 된다. 평원에 닿으면 밭농사를 짓고 사는 민가가 한 채 있다. 밭이 있지만 숲이 들어차 사람이 사는 것 같지가 않다. 예부터 지상낙원 피안의 세계 엘도라도를 꿈꾸는 사람들이 교대로 드나든다.

2시 10분, 등산로옆 20m지점, 큰 바위틈 돌계단을 힘겹게 오르면 그 끝 자연동굴 안쪽 반반한 바위 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다. 보물 530호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이다. 본존불을 중심으로 아미타여래와 관음지장보살을 양쪽에 거느린 모양새다. 언뜻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충남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각진 어깨 밋밋한 가슴을 가진 본존불, 부자연스럽게 가슴에 모은 팔 등은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이다. 비와 바람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은밀한 곳에 숨튼 탓에 훼손이 적어 방금 전 새긴 것처럼 정교하고 세밀하다. 조형성은 뛰어나지 못하다. ‘천경원년 10월’이라는 암각으로 미뤄 고려 예종 6년 1111년에 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가섭암은 1770년경 폐사됐고 지금은 몇 개의 석재만이 남아 있다. 당시 출토된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은 거창 위천초등학교에 옮겨져 있다.

2시 30분, 문바위. 단일암으로는 국내 최대바위로 알려져 있다. 가섭암(절)입구에 있다하여 가섭암(바위)이라고도 하고 고려 말 충신인 달암 이원달 선생이 망국의 한을 달랬던 곳이라 하여 순절암 혹은 두문암이라고도 부른다. ‘달암 이선생 순절동’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금원산 자연휴양림 큰길을 가로질러 하산할 수 있다. 이 휴양림은 전국 유일의 고산수목원으로 피서철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곳이다.

경남도 소유로 1993년 1300명 수용규모로 개장했다. 2012년 생태수목원과 자연휴양림을 통합해 거창군이 위탁관리 한다.

큰길 큰 계곡, 선녀담과 세선녀바위에는 아름다운 경관에 어울리는 사연도 있다. 천상의 세 선녀가 금원계곡에 목욕을 하러 내려왔다가 맑은 물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해 귀천할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선녀담 바위 속으로 숨은 것이 화근이 돼 영원히 바위로 굳어버렸다. 요즘 세상엔 여인이 소에서 목욕재계하고 소원을 빌면 아기를 낳는다고 한다.

휴양림관리소 매표소를 빠져 나와 미폭의 물소리가 크게 들릴 즈음, 5시간에 걸친 현성산 원점회귀 산행이 끝난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
마애삼존불상 입구 참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