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를 찾아서] 진주 중앙시장 제일주단
[노포를 찾아서] 진주 중앙시장 제일주단
  • 곽동민
  • 승인 2015.07.20 15:4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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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걸친 한복장사…중앙통 역사와 함께 해와
▲ 중앙시장 제일주단 이윤진 할머니


아직 앳된 티를 못 벗은 15살 소녀는, 시장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뒤를 좇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점포로 향했다.


포장도로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비가 오지 않아도 질척거리는 흙길이라 장화를 신지 않으면 길을 건너 다닐 수 조차 없었던 시절. 6·25전쟁이 끝난 지 불과 2~3년이 지나지 않았던 그때부터 였다.

당시의 중앙시장은 지금의 현대식 건물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판자로 점포를 지어 벽에는 벽지 대신 신문을 발랐다. 흙바닥에 마루를 깔아 가운데 구멍을 내고 거기에 숯불 화로를 놓아 추운 겨울을 견뎠다. 낡은 집과 3평 남짓의 점포는 소녀의 세상 전부였다.

소녀의 아버지는 비단 장사를 하셨다.

한복을 지을 주단을 파셨는데, 겨우 식구들이 굶지 않고 밥 먹을 정도의 이문이 남았다고. 그래도 소녀는 굶는 사람이 훨씬 많았던 시절, 시장에서 장사를 한 덕분에 배를 곯지 않아 감사한 삶이었다고 추억했다.

거창한 이유도, 장사로 성공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꾼 것도 아닌 그저 살아가기 위해 아버지를 따라 주단 장사를 시작한 그 소녀는 이제는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됐다.

진주 중앙시장 한복거리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이윤진(78) 할머니. 아버지를 따라 주단 장사를 시작한 할머니는 지금은 며느리와 함께 주단과 한복, 생활한복 장사를 하고 있다. 3대에 걸쳐 가업을 지켜가고 있는 것.

 

▲ 중앙시장 제일주단 이윤진 할머니 


그런데 ‘가업을 잇고 계시다’고 했더니 대번에 손사례를 치신다.

그녀는 “어릴 때 부터 유독 몸이 약해 아무것도 못했다. 제대로 된 기술도 배우지 못해 도움 줄 사람과 장사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먹고 살기위해 한 것이지…가업을 잇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은 없다”면서도 “몇해 전 며느리와 손주들과 함께 중앙시장 한복패션쇼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기분이 좋긴 좋더라”며 수줍어 했다.

이 할머니는 중앙시장에서 오래 장사를 해온 덕분에 시장의 역사나 다름없다.

이 할머니는 “옛날엔 여성국악단 단원들이 한복을 많이 지어 입었다. 종종 진주극장에서 공연이 열릴 때면 국악단 단원들이 진주여관에 머물렀다. 그 때 한복을 가져다 주러 진주여관에 갔다가 극장까지 따라가 공연을 구경하기도 했다”며 “당시에 극장 옆에서는 돼지도 키웠다. 그러니 길이 언제나 질척거렸다. 항상 장화를 신었었다”고 추억했다.

지금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돼 버린 중앙시장 화재로 점포를 잃는 아픔도 겪었다.

그녀가 지금의 동양상회 자리에서 장사를 하던 1966년 2월 6일. 중앙시장이 화재로 대부분 소실 됐다. 할머니의 가게 역시 불에 타 사라졌다. 그 때가 둘째 아이를 갓 낳았을 때라고. 시장이 삶의 전부였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세 아들을 키워냈다.

15년쯤 전부터는 기운이 없어 혼자 장사를 하기 어려워졌다. 며느리가 돕기를 자청했다. 그렇게 이어온 가족의 주단 장사는 이제 제법 규모가 커져 꽤 큰 점포 2곳을 운영하고 있다.

제일주단 1호점으로 한복과 주단을 주로 판매하는 곳은 할머니가, 바로 맞은편 2호점은 요즘 연세 있으신 분들이 많이 찾는 생활한복을 판매하고 있다.

이 할머니는 “예전에는 결혼 혼수로 꼭 한복을 지어입고 예단도 넉넉하게 해서 한복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그리 많지 않다”며 “대신 자연섬유로 지어 시원하고 편한 생활한복을 찾는 사람이 많아 생활한복 장사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 시장에서 한복점을 해 왔지만 그대로 머무르지 않고 손님이 찾기 편한 점포가 되기 위한 노력도 잊지 않고 있다.

한복점은 주단을 바닥에 깔아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며 골라야 하는 특성상 신발을 벗고 안으로 올라서야 하는 구조를 바꾸기 쉽지 않았지만 생활한복점은 문턱을 없애고 바닥을 깔끔하게 정리해 접근성을 한층 높였다. 내부 조명과 옷 배치도 나이가 있는 여성들이 고르기 편하도록 배려했다.

이 할머니는 “그저 좋은 재료로 만든 좋은 옷 필요한 사람에게 파는 걸로 만족하며 살고 있다. 어려운 시절 한복 장사 덕에 굶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에 너무나 감사하는 마음”이라며 “시장이 서고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점포에 나올 생각이다. 여기가 내 삶의 터전이니 달리 갈 곳도 없지 않느냐”고 말하며 소녀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곽동민기자 dmkwak@gnnews.co.kr



 

중앙시장 제일주단 이윤진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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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2019-08-30 22:32:19
여기서 한복 샀는데 서비스가 별로여서 아쉽네요,,, 전통은 있으나 시대의 흐름을 맞추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전통시장 각성 2019-08-30 22:31:25
제일주단 여기
옷 사간거 환불도 안된다하고 되게 서비스가 안좋았습니다.
다시는 시장에서 옷 안사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드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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