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위식의 발길 닿는대로 (71) 호연정을 찾아서
윤위식의 발길 닿는대로 (71) 호연정을 찾아서
  • 경남일보
  • 승인 2015.08.2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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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 부럽지 않은 멋 풍기는 팔작지붕의 풍채
합천 호연정


괴팍스럽던 폭염이 수그러들자 벼이삭도 패고 참깨 들깨도 여물고 작은 풀꽃들도 열매를 익혀가는 이맘때만 되면 제값 못하는 것은 사람밖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내년 봄 20대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마다 공천제도를 민의를 담아 공정하게 해보겠다고 온갖 꾀를 파고 있지만 국민들의 피땀 어린 국세만 낭비하는 권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어 불현듯 ‘직불용’ 선생이 생각나서 합천의 ‘호연정’을 찾아서 길을 나섰다.

“작은 모래분에서 자란 반 척의 소나무,
한평생 풍상을 무릅쓰고 옹종하게 늙었구나,
나는 아노라, 저 소나무 하늘 높이 자라지 않은 뜻을,
사람이 올곧으면 용납되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명나라 황제가 아끼는 분재를 내보이며 명종 6년에 사신으로 간 주이 선생께 시 한수를 지어 보래서 올곧은 사람은 등용되지 못한다는 것을 빗대서 지었는데 세상사 깊은 뜻을 두고두고 상기하며 ‘직불용’ 선생이라는 별호까지 붙여 늘 안부를 전해왔다는 ‘이요당’ 주이 선생께서 예안현감을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와서 후학들을 가르쳤던 ‘호연정’을 찾아 진주에서 33번 도로를 따라 합천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호연정’의 현판을 쓰신 조선조 선조대에 대사헌과 우의정을 지내신 미수 허목 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미연서원’부터 들러야겠다 싶어, 삼가 못 미쳐서 신평저수지를 끼고 우회전을 하여 의령 대의면 중촌리 들머리의 ‘미연서원’을 찾았다.

 
호연정 천장

 

인지문(仁智門)이란 편액이 걸린 솟을대문은 잠겨 있어도 나지막한 담장 너머로 ‘미연서원’이라는 현판이 붙은 정당인 ‘이의당’이 꽤나 널따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동서 당우를 거느린 5칸 겹집의 기와건물은 중앙에 대청마루 두 칸과 좌우로는 온돌방을 마련하고 뒤로는 ‘숭정전’인 미수 허목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고즈넉하게 앉았는데 건물 전체가 군더더기 하나 없이 간결하고 소박하여 의관을 정제하신 미수 선생께서 합죽선을 들고 대청마루에 서신 듯하다. 문이 열렸으면 예도 갖추고 선생의 학덕도 되새겨 보련만 아쉬운 발길을 돌리며 우암 송시열 선생과의 일화를 ‘호연정’에 올라 새겨볼까 하고 되돌아 나와서 가던 길을 재촉했다.

4차선 도로가 완공이 덜 되어 삼가를 거치게 돼있어 면사무소 앞의 ‘기양루’를 찾았다. ‘삼복더위가 무쇠솥을 녹인다.’ 라고 난중일기의 중복날에 이순신 장군께서 초계의 권율 장군 진영을 찾아 백의종군 길에 더위를 식히며 잠시 머물다 간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고색창연한 유서 깊은 2층 누각이다. 중복이 한참 전에 지났으니 장군께서는 이미 ‘모여곡’으로 떠나셨으니 누각에서 내려와 가던 길로 돌아섰다.


다시 4차선 도로를 한참 가다가 합천으로 내리는 출구로 내려서자 은빛 백사장이 황강물을 끌어안고 길게 굽이진 건너편에 황우산 석벽을 등에 진 ‘함벽루’가 황강물에 발을 담그고 있어 그림 같은 풍광이다.

합천길을 뒤로하고 초계로 이어지는 24번 도로를 따라 3km남짓 가면 왼편 산기슭을 깔고 작은 마을 ‘문림리’가 나오는데 마을 날머리 쪽에서 왼편 산기슭으로 접어들면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우거진 노거수의 짙은 그늘 아래 나직하게 담장을 두른 ‘호연정’이 없는 듯이 자리를 잡고 앉아 휘돌아 굽이쳐서 개벼리 벼랑을 끼고 흘러가는 황강을 굽어보며 옛 세월을 그리며 고즈넉하게 상념에 잠겨 있다.

작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인지문’이라는 작은 대문으로 들어서자 빨간 꽃이 만개한 배롱나무가 널따란 경내를 허한 곳 없이 가지를 드리웠는데 하나 같이 밑둥치는 삭아서 속이 비어 있고 세월의 상처인지 주먹 같은 옹이가 빼곡한 껍데기도 구멍이 숭숭 났다. 호사를 멀리한 선비의 절제일까. 애당초 단청은 입히지도 않은 ‘호연정’은 회색으로 빛이 바래 근엄함이 풍기는데 활주를 받힌 팔작지붕의 추녀가 유난히도 길게 뻗어 활기찬 풍채가 거침없이 당당하여 위엄차고 장엄하다. 야트막한 축대 위에 두어 뼘 높이의 나직한 마루청에 난간을 두르고 방 두 칸을 마련하여 분합문을 달았는데 삼면의 창방을 활처럼 휘어진 목재를 써서 특이하고, 중도리와 주심보를 연결한 들보는 아예 용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구불구불한 원목을 그대로 걸쳤다. 눈가는 데마다 기기묘묘한 건축방식이라서 보고도 설명이 안 되는 구조인데 원형의 기둥마저도 굵기도 다르고 목재도 제각각이다. 곧아야 좋은 것과 굽어야 좋은 것을 일러주려는 주이 선생의 깊은 뜻을 담았을까? 마루청에 좌정을 하고 매미소리에 잡념을 씻으니 선현들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다.

“네가 나를 믿지 못하여 아버님도 속여 비상을 반으로 줄였구나.”, “처방대로 달여라는 아버지의 엄한 당부를 속였습니다.”, “비상은 두 번 다시 쓸 수 없으니 안타깝구나.” 우암의 병세가 낫기는 했으나 다소 미흡해 한번만 더 처방전을 써달라고 찾아온 우암 송시열 선생의 아들과 미수 허목 선생과의 나눈 말이다. 우암은 ‘함벽루’의 석벽에 글을 새겼고 미수는 황강을 사이에 두고 이곳 ‘호연정’에 현판으로 글을 남겼으니 두 사람의 연이 어디까진지는 알 수는 없으나, 서로 다른 당파의 영수들로 궁중 복상의 상례문제로 정적의 감정이 극에 달했어도, 살리려 할 것이라고 우암은 미수를 믿었고 미수는 우암이 나를 믿어 줄 것이라고 서로를 신뢰한 선현들의 인품에 가슴이 찡하다.

 

호연정 은행나무

 

경내엔 주이 선생께서 심었다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밑둥치의 둘레가 5m를 넘는데 벼랑쪽의 나무는 겉으로는 멀쩡해도 속이 비었는데 가지가 벌어진 키 높이 위에서 설대가 자라서 무성하게 푸르렀다. 더부살이의 연도 유분수지 세월의 풍상에 속이 괴고괴어 썩어버린 몸통에 암팡지게 날름 들어앉아 제 새끼를 치고 있으니 이 무슨 변괴인가?

‘어허! 필자는 그렇게 나무라지 말게나. 시류에 따른 융통성(?)이 없으니 가진 것도 없고, 의와 도를 갖추었으니 남의 것을 함부로 취할 수도 없고, 옳고 그름이 분명하여 아무 앞에나 머리를 조아릴 수도 없으니 이를 어쩌겠나. 풍우와 한설에도 절의를 지키니 나보다는 낫지 않은가.’ 길을 찾아 나섰는데 길이 어지럽다. 당장 ‘호연정’을 나서면 세상사는 딴판인데 이를 어쩌나.

단청이 화려한 비각 옆의 세덕사와 배롱나무 그늘에 묻혀 없는 듯이 고요한 영모사에 예를 갖추고 지인문 밖을 나서서 율곡면 낙민2구 마을 ‘매실’을 찾아서 초계로 이어지는 24번 도로인 ‘개벼리길’을 따라 낙민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였더니 이내 백의종군로의 포지석을 만났다. 꽤나 널따란 들판을 끼고 마을회관 앞에 차를 세우자 충무공의 유숙지를 알리는 표지석이 섰다. 옛 이름이 ‘모여곡’인 작은 마을 끄트머리의 언덕배기 집이 ‘이어해’의 옛집으로 충무공께서 권율 장군의 진영을 오가며 42일 간 머무셨는데 아직도 정비사업이 미뤄지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뒷산은 창검을 갈던 숫돌이 나는 산이고 매화꽃처럼 둘러친 산에서는 화살을 만드는 설대가 무성했으며 마을 뒤 옴팡진 작을 골이 말무덤이란다. 황강변의 들녘이 권율 장군의 진영이자 훈련장이었다며 난중일기를 날짜별로 필사하여 학계와 관계기관을 오가셨던 이종규 옹은 고령이라서 손을 놓으시고 이제는 이존석씨가 마을의 내력을 일러주며 역사의 발자취를 되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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