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제주, 사려니숲길와 윗세오름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제주, 사려니숲길와 윗세오름
  • 경남일보
  • 승인 2015.08.1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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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만으로도 마음까지 힐링되는 곳
짐승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돌을 쌓은 산담.

 

◇사랑과 동경이 곧 힐링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을 두고 흔히 ‘사랑에 눈이 멀었다’거나 ‘콩깍지가 씌었다’는 말을 한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실질적으로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묘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한 결과에 의하면 코카인에 중독됐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신경체계가 사랑에 빠졌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활성화되는 현상을 보였다고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강렬한 기쁨을 느낌과 동시에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일이나 주변의 모든 현상이 아름다워 보이는데 이건 비록 사람과의 사랑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행,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을 가지는 순간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그러한 느낌을 갖게 된다고 한다. 여섯 번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서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처럼 ‘새로움’과 ‘힐링’으로 부푼 가슴을 안고 제주도 사려니숲과 윗세오름 트레킹을 떠났다. 어쩌면 여행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기대와 동경이라는 코카인에 중독되어 기분은 하늘로 날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6시에 진주에서 출발하여 전남 고흥에 도착한 뒤 녹동항에서 9시에 고속 카훼리호를 타고 출발하여 오후 1시에 제주항에 도착했다. 모두들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과 일상에서 해방되었다는 느낌 때문인지 일행끼리 모여 떠들썩하게 얘기를 나누는 것도 배 여행의 묘미다.



◇신성한 사려니숲길에서 만난 산담

첫날 오후, 사려니숲길 트레킹을 했다. 사려니는 ‘살안이’ 혹은 ‘솔안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서 쓰인 살 혹은 솔은 신성한 곳이라는 신역(神域)의 산명으로 사려니는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다. 사려니숲길은 길 양켠에 삼나무, 비자림, 편백나무, 졸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자라는 울창한 자연림이 넓게 펼쳐져 있는 전형적인 온대성 산지대에 해당하는 숲길로 총 길이는 약 15km이다. 이중 붉은오름 사려니숲길 입구에서 월든삼거리 삼나무숲, 물찻오름, 천미천, 새왓내숲길 그리고 사려니숲길 안내소까지 약 10km 정도 트레킹을 한다. 초입부터 마치 고흐의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삼나무숲길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탐방객들은 모두 그 이국적인 풍경에 압도당하면서도 신기한 느낌으로 잘 닦아놓은 숲길을 걸어갔다. 사려니, 말 그대로 신성하고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아름드리 삼나무들이 숲길을 호위하고 있고 나무들 사이로는 산수국과 한창 하얀 꽃대를 올린 박새, 조릿대, 큰천남성이 서로 자신만의 향기와 짙푸른 잎으로 탐방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오전까지 내렸던 비 탓인지 숲길 모퉁이마다 남아있는 안개구름이 삼나무숲길을 신비로운 자태로 그려놓고 있었다. 청정한 산소를 마시면서 걷는 것도 힐링이 되는데,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선물해 주니 발걸음마다 행복감이 묻어나는 듯했다.

탐방객들이 한담을 나누며 삼나무숲길을 걸어가다 길섶에서 뭍에서는 볼 수 없는 무덤 하나를 발견했다. 육지의 묘소와는 달리 주위를 현무암 돌로 둘러친 독특한 돌담이 쳐진 무덤이 있었다. 주변에 있는 무덤들도 주로 사각형이나 원형으로 돌을 쌓아 놓았는데, 이 돌담을 ‘산담’이라 부른다고 한다. 산담은 말이나 소의 방목으로 인한 무덤이 훼손되는 것을 막고 산불로부터의 피해를 막기 위해 쌓아놓은 제주도 사람들의 독특한 분묘 문화라고 한다. 또한 흙이 적은 제주에서 무덤의 봉분에 쌓은 흙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산담을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삶 하나하나에 제주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산담에는 죽은이의 혼령이 살았을 때의 집으로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문(출입문)’을 만들었는데, 산담의 출입문은 오른쪽 문은 남자 망자의 것, 왼쪽 문은 여자 망자의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제주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산담은 제주도 사람들의 정신문화가 담긴 소중한 유물로서 오래오래 보전하고, 후세 사람들에게 남길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환상적인 삼나무숲길의 사려니숲.
윗세오름 길섶에 핀 설앵초.



◇윗세오름길,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 야생화

다음 날 아침 일찍 윗세오름 트레킹을 하기 위해 어리목으로 갔다. 어리목에서 영실로 내려오는 12.6km 트레킹 코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을 오른다는 설렘과 더불어 첫걸음을 뗐다. 처음엔 좀 가팔랐다. 모두들 힘에 겨워서인지 한 마디 말도 없이 산행을 하고 있는데 머리 위 숲속에서 우리들의 팍팍한 발걸음의 수고를 덜어주는 휘파람새 소리가 들렸다. 정말 맑고 청아했다. 한라산에서 듣는 휘파람새 소리는 정말 훌륭했다. 휘파람새 소리가 탐방객들의 등을 밀어주는 큰힘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출발한지 1시간 30분쯤 지나서 사제비 동산에 닿았다.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며 피기 시작하는 철쭉들이 수줍은 듯 우리를 반겨 주었다. 사제비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 조금 더 발걸음을 옮기자 넓은 평원이 나타나고 구상나무와 조릿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절망 장관이었다.

하늘길로 올라가는 데크가 사닥다리처럼 놓여있고 길섶에는 온갖 야생화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하얀 물매화, 분홍빛 설앵초, 노란 바위양지꽃, 미나리아재비꽃, 흰그늘용담 등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이 여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탐방객들 모두가 걸음을 멈추고 꽃들의 향연에 눈길을 주었다. 예쁘지 않은 들꽃이 어디 있겠냐만 특히 고산 지대에 핀 설앵초는 단연 탐방객들의 마음을 홀리기에 충분한 미모였다. 꽃들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얼굴과 꽃들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기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윽한 꽃향기가 풍겨왔다. 꽃에 홀려 있는 사이, 어느덧 윗세오름에 도착했다. 준비해간 점심도시락을 먹은 뒤, 아쉽게도 백록담을 뒤로 하고 영실로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내려오는 길, 구상나무 군락지, 오백나한상과 병풍바위는 지쳐있는 탐방객들의 피로감을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영실에 도착한 일행은 산을 오를 때보다 훨씬 가볍고 신명나는 발걸음이었다. 1박 2일 동안의 한라산 윗세오름과 사려니숲길 트레킹은 처음 출발할 때의 기대감과 설렘을 충족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몸 속 가득 신령스러운 기운을 담아갈 수 있는 좋은 힐링이 되었다.


박종현 시인



윗세오름으로 올라가는 사닥다리 데크.

윗세오름에서 바라본 한라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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