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밭 풍경
사과밭 풍경
  • 경남일보
  • 승인 2015.09.09 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동이 (경남수필문학회장)
이동이
사과 따기 체험행사에 동참했다.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자 제각각 크고 빛깔 좋은 것을 따려고 밭고랑을 넘나들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섰다. 자연이 그려내는 이 찬란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단단하면서도 옹골찬 그것들은 일제히 하늘로 날랐다. 폭죽을 터트리듯 저마다 팡팡 소리를 내며 창공으로 흩어졌다. 장엄한 그들의 행렬에 기가 눌려 꼼짝 할 수가 없었다. 뉘라서 이 도도한 행위에 태클을 걸 수 있을까.

붉은 방점이 하늘에 빼곡히 박힐 즈음 사방에서 향긋한 향이 코끝에 와 닿았다. 그제야 혼자 서 있는 자리가 정물화처럼 고요한 풍경 속인 것을 알아챘다. 압도적인 붉은 색깔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후각이 잠시 제 기능을 보류했던 것일까. 차츰 감각을 되살려 향의 근원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니, 하늘로 나르던 사과가 어느 새 내 눈앞에도 주렁주렁 열렸다.

한 나무에 얼마나 많이 달렸는지 가지가 휘늘어졌다. 살짝 건드리면 부러질까 위태롭다. 하지만 서로 부여잡은 품새가 여간 야무지지 않다. 꽉 붙들고 있으니 무력을 가하지 않는 한 그들의 끈끈한 순정을 어쩌지 못한다. 짐짓 저토록 서로 다잡아 끌어안는 사이가 내게 있기는 한지, 지금껏 내 한 몸의 욕망을 이루고자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는지, 숙연한 마음이 되어 뒤돌아보게 된다.

사과 따기에 급급하기보다는 찬찬히 풍경에 몰입하다보니 광주리가 텅 비어 있다. 그제야 이랑을 건너오는 일행의 모습이 보이자 갑자기 내 얼굴도 사과처럼 발그레 달아올랐다. 서둘러 사과를 땄다. 한 개가 손에 차고 넘친다. 사과를 쥐고 살살 몇 바퀴 돌리니 꼭지가 똑 하고 떨어진다. 경쾌함이 희열을 안겨준다.

가만, 잎사귀에 가려진 것보다 햇살을 튕기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확실히 튼실하고 크다. 그런 것은 손을 뻗어도 닿기 힘든 높은 곳에 있다. 문득 어떠한 난관도 과감히 맞서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담대함 같은 것이 사과에서도 느껴진다. 자신감은 자신이 보지 못하던 그 이면의 것을 보게 하는 힘까지 생기는 것일까. 한 알의 사과마저도 이미 그 이치를 터득한 듯 탱글탱글하다.

서로 아우르면서도 자연스레 드러나는 당당함. 제 품을 키워 많은 결실을 맺고 무게마저 감내하는 사과나무를 보며 인생 제대로 한 수 배운다.
이동이 (경남수필문학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