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간다는 것’에 대하여
‘익어간다는 것’에 대하여
  • 경남일보
  • 승인 2015.09.1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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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근 (수필가·지리산 힐링 시낭송 대표)
김태근

언제나처럼 거실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와 눈인사를 나누며 하루를 연다. 아침부터 휴대폰으로 시와 음악, 좋은 글과 정보들이 부지런히 날아든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너무 많은 정보들이 쏟아지니 오히려 좋은 말도 제 구실을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이내 마음을 사로잡은 음악이 있었다. 가수 노사연의 ‘바램’이라는 노래다. 가수 김종환이 작사·작곡한 노래였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그대뿐입니다.’ 나는 ‘익어간다’는 가사에 마음을 빼앗겼다. 가사 한 줄 한 줄이 지천명을 바라보는 중년의 가슴을 녹아들게 한다.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포도주처럼 익어가는 것이다.’ 미국의 설교자인 ‘필립스 브룩스’의 명언을 적어보며 익어간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가을이 되니 모든 것이 익어간다. 들판의 곡식도 익어가고, 우리네 꿈도 익어간다. 익을수록 저마다의 빛깔은 점점 달라진다. 익어가는 이 모든 것들이 그냥 저절로 익을 리가 없다. 한나절 땡볕을 견뎌내고 쏟아지는 폭풍우를 견뎌냈기에 제 빛깔로 익어가는 것이리라. 어디 자연만 그러하겠는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뜻하지 않은 고통과 삶의 무게로 흔들리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걸을 때 비로소 익어갈 수 있는 것이리라.

나는 시낭송대회에 천 번을 더 연습하고 참가해도 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대상을 받는 것은 한번이지만 받지 못하는 경우는 수십 번이었다. 그 실패의 세월들이 영예의 대상을 선물하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이렇듯 실패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리라.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이 계절을 바꿔 놓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실패의 순간들이 모여 우리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킨다.

‘색채는 모든 빛의 고통이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한 이 말은 수년째 내 수첩 첫 페이지에 떡 하니 앉아 있다. 제 빛깔을 뽐내기에 여념이 없는 가을들판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숙연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양한 색으로 짙어가는 이 가을,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익어가야 할 것인지 돌아볼 일이다.

김태근 (수필가·지리산 힐링 시낭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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