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음식의 가치
[경일포럼] 음식의 가치
  • 경남일보
  • 승인 2015.09.15 0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연만 (환경부 차관)
요즘 소위 ‘먹방(먹는 방송)’이 인기를 끌고 있다. 최신 트렌드가 가장 잘 반영된 방송을 먹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 이렇게 먹방에 사람들은 열광할까. 아마도 과거와는 달라진 음식의 가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즉 웰빙을 생각하는 조리방법과 음식 맛을 즐길 수 있는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이리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처럼’이라는 옛말처럼 예전에는 명절만큼 신나는 날이 없었다.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좋았지만, 먹을 것이 부족해 늘 배고팠던 일상과 달리 푸짐하게 차려나오는 밥상은 마음껏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음식을 먹기 위해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명절 후 다이어트를 걱정하고 소식으로 건강을 챙기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직도 우리의 머릿속에는 ‘명절 밥상=푸짐함’이라는 공식이 존재한다. 그래서일까.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가 2013년 기준으로 하루만에도 무려 1만2600t에 이르고 명절에는 이보다 20% 정도 더 발생한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명절에 남은 음식은 냉장고 어딘가에 보관돼 있다가 결국 쓰레기가 돼 버린다. 최근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렇게 낭비되는 음식물쓰레기를 20%만 줄여도 연간 1600억원의 쓰레기 처리비용이 줄고 에너지 절약 등으로 5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이익이 발생한다고 한다.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먹을 수 있는 양만큼만 적당하게 준비를 하는 게 필요하다. 음식은 문화다.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 개인과 가정의 역할이 중요하다. 가정에서 발생하는 음식물쓰레기의 약 1/10이 보관되거나 먹지 않고 버리고 있으므로, 과다한 식품구매는 자제하고 냉장고를 정기적으로 정리하거나 투명용기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음식물쓰레기 발생량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명절 후 남은 잡채를 유부 주머니에 넣어 냄비요리를 하거나 남은 나물들을 김에 싸서 튀긴 김말이 요리를 하는 등 남은 음식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홈페이지(www.zero-foodwaste.or.kr)를 방문하면 ‘그린레시피’라는 제목으로 게재돼 있다.

불교에는 오랜 전통의 식사의례인 발우공양이 있다. 발우공양은 행자가 청수물을 돌리며 그릇을 헹구는 것으로 식사를 시작하고, 식사가 끝날 때도 물로 헹궈 남은 음식을 모두 먹은 후 청수물로 그릇을 헹궈 정리하는 것으로 의례를 마친다. 쌀알 하나도 그것을 지어낸 이의 공덕을 헤아려 버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발우공양의 정신이며, 음식을 소중히 여기고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친환경적인 식사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음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변해도 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무심코 남기고 버리는 음식에는 단순한 칼로리가 아닌 수많은 가치가 담겨 있다. 자연과 생명과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생각이 음식에 담겨 있으면, 현대인에게 건강한 삶과 배려의 마음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요즘 들어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이러한 가치의 재발견에 기인하지 않았나 싶다.

민족의 대명절 한가위가 다가온다. 한가위는 본래 한 해의 정성을 열매로 수확하고, 이를 조상님께 감사드리기 위해 온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 즐기는 날이다. 올 추석은 푸짐한 상차림보다는 음식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며 적정한 상차림으로 깔끔하게 보냈으면 한다. 명절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뜻 깊게 보내는 한가위, 그 미덕은 풍요로운 마음만으로도 족할 것이다.

 
정연만 (환경부 차관) 경일포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