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윤위식의 기행
윤위식의 발길 닿는대로 (72) 함양 교수정언덕배기에 자연인 듯 올라앉은 정자의 멋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9.15  20:52:43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 교수정

간밤엔 홑이불이 얇다싶더니만 아침 햇살이 거실바닥에 내려 앉아 밥상머리까지 깊숙하게 들어온다.

두문동 72현 중의 한분이시고 포은의 문인으로 고려삼은과 친교하며 성리학을 강론하신 고려말의 문신이자 학자이신 조승숙선생의 ‘교수정’을 찾아 길을 나섰다.

진주에서 35번 고속도로를 타고 지곡요금소를 나와 24번 도로를 따라 지곡면사무소 방향으로 들면 함양 상림의 정취에 젖을 수 있고 가을이 물들어가는 고산준령을 넘어볼까 하고 함양IC를 나와 상림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울울창창한 천년의 숲은 가을 채비를 하려는지 푸른빛이 옅어졌다.

상림의 숲속은 또 다른 별천지다.

상림의 안섶인 드넓은 공원은 숲 쪽은 연밭이고 산 쪽은 꽃밭이다.

어쩌면 이토록 화사할까. 고고한 자태는 뉘라서 따라갈까. 유혹의 향기도 풍기지 않고 유인을 위한 꿀도 없어 ‘화중지왕이지만 봉접이 불왕래’ 라고 벌과 나비가 찾지 않아도 천년을 두고도 싹틔울 씨앗을 연밥 속에 품고 튼실한 연근을 티 안 내고 키워가며 필 때는 신비하고 피어서는 기품 있고 질 때는 고고하다.

때가되면 미련도 두지 않고 집착도 하지 않고 시들어서 추하거나 흐트러진 모습도 보이지 않고 화사하고 고귀한 자태를 끝내 지키며 어느 순간에 흔적도 없이 흩날려버린다. 인간사도 이대로 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데 앙증맞은 수련들이 색색으로 피어서 작은 연못마다 예쁘게도 떠있다. 이러다 해를 잡겠다 싶어서 떨치고 돌아서니 해바라기와 코스모스가 대단지로 활짝 피어 가는 객을 붙잡았다.

키가 큰 해바라기는 달덩이 같은 커다란 얼굴을 하고 틈새도 없이 빼곡하게 엄청난 무리를 지어 모두가 빤하게 쳐다보고 있어 아베총리가 안하무인이라고 일장연설을 해야 하나, 아니면 이산가족 상봉자를 추첨을 하게 하다니 천륜을 배반하면 천벌이 내린다는 것을 김정은은 아직도 모르는가. 각각의 색을 달리한 코스모스는 쭈뼛쭈뼛 고개를 들고 구경만 하는데 뒤로는 산자락을 밟고 세종대왕의 열두 번째 아들인 비운의 왕자 한남군이 갈수록 심해지는 청년실업문제가 더 급해선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아무런 말이 없다.

병곡면 쪽으로 차를 몰았다. 조선조 9대왕인 성종은 노모를 위해 관직을 두고 낙향하겠다는 뇌계 유호인을 위해 지방관직까지 제수하고도 송별연에서 까지 그토록 보내고 싶지 않아서 “있으렴 부디갈따 아니가든 못할소냐 무단히 싫더냐 남의 말을 들었느냐. 그려도 하 애도래라 가는 뜻을 일러라” 며 애타는 심정을 즉흥시로 읊자 장중의 신하들도 눈물을 흘리게 한 군신간의 애틋한 석별의 정을 새긴 성종의 시비가 뇌계선생을 기리고자 만든 뇌계정 정자 옆에 돌비로 세워졌고 건너편 길섶의 작은 둔덕 위엔 ‘뇌계선생의 낚시터’ 라고 쓴 돌비석이 벼랑 아래의 위천천 맑은 물을 하염없이 굽어보며 역사에 아로새긴 옛정을 낚느라고 홀로서서 초연하다.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산촌의 풍광에 젖으며 월암마을도, 마평마을도 지나 옛사람들이 간절히 빌고 빌던 성황당 돌탑도 뒤로하고 굽이진 고개를 넘어 익어가는 수수와 촘촘히도 열어서 빨갛게 탐스런 사과밭을 지나 높다란 홍살문을 앞세운 도곡서원에 닿았다.

불사이군도 옳으시나 백성을 위해 거듭날 수도 있지 않으십니까? 수양산으로 들어가서 고사리만 먹다가 굶어죽은 백이숙제의 뒤끝이 무엇이었습니까? 고려의 망국은 필연이고 조선건국은 시대의 명인데 정녕 부귀영화도 마다시고 두문동으로 은신하여 굶어죽을 작정이셨습니까? 하고는 벼락이 떨어질 줄 알고 ‘요즘은 한자리 하려고 가리지도 않고 목숨을 거는데’ 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눈을 꼭 감았는데 불호령이 안 떨어지는 걸 보면 문경공 조승숙선생은 교수정으로 가신듯 해서 도곡서원의 정당인 수성당 뒤의 선현 7위의 위패가 봉안된 사당 앞에서 목례만 올리고 서둘러서 교수정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 성종의 사제문 비석


정여창 선생의 고택과 풍천노씨 종가며 하동 정씨 고가 등 고택이 즐비한 개평마을을 그냥 지나치기가 못내 아쉬웠지만 여러 차례 찾아 서너 편의 글도 남겼으니 곧장 가던 길을 재촉하여 지곡면사무소 앞에서 좌회전을 했다. 지곡천이 흘러가는 널따란 들판을 끼고 1km 남짓한 거리의 길옆으로 벼랑 끝에 불쑥 솟은 동산이 낙락장송이 어우러져 동양화폭을 옮겨다 놓은 듯 그림 같은 풍경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꽤나 널따란 주차장을 바깥마당으로 삼고 ‘숭경문’이라는 현판을 단 우람한 솟을대문이 엄숙하고 정중하게 길손을 맞이한다.

숭경문을 들어서자 배롱나무의 빨간 꽃이 활짝 핀 마당을 마련하고 덕곡선생이 후학을 가르쳤던 ‘수성당’이 근엄한 옛 내음을 물씬 풍긴다. 수성당 뒤로는 단청이 화려한 사당 덕곡사인데 옆으로 ‘고려충신덕곡조선생백세청풍비’라고 새겨진 웅장한 비석을 커다란 돌거북이 목을 늘이고 등에 업었다. 한 발짝 물러선 작은 비각은 함안조씨 5형제의 효자비정려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바위틈과 언덕배기를 절묘하게 이용하여 돌계단도 쌓고 담장도 두르고 협문도 달았는데 동산 정수리에 자리 잡은 ‘교수정’은 노송의 그늘에서 지곡천 벼랑을 발끝에 두고 가을로 접어드는 들녘을 굽어보며 백세청풍의 선경으로 높이섰다.

교수정 협문을 나서면 두루뭉술한 바위들이 노송의 그늘에서 넙죽넙죽 엎쳤는데 등에는 주먹마한 홈이 여러 개씩 패였다. 지곡천을 은하수로 삼고 북두칠성을 새겼다니 선생은 두문동에서 나와 이곳 향리에서 새로운 우주를 펼치신 걸까. ‘교수대’라고 커다랗게 음각된 바위 옆으로 세월의 흔적이 역역한 빗돌이 섰는데 ‘수양명월 율리청풍’이라 크게 새기고 작은 글씨로 ‘봉렬대부사헌부장령 신 뇌계유호인근봉 교제진’이라 새겨있다. 이는 선생이 가신지 70여년이 지났건만 성종은 귀향하는 뇌계에게 일러 덕곡선생의 제사를 극진하게 모시라며 제문에 쓰인 백이숙제의 수양산과 도연명의 율리를 따서 비석에 새겼다니 선생의 충절과 학덕을 높이 찬양함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비석은 자연석 바위에 거북등을 만들어 세웠고 머리는 잡귀를 쫒는 해태의 형상을 조각됐다. 선생이 가꾸신 작은 우주에는 지엄한 유훈이 만대로 이어지고 깊은 뜻은 만고상청 그침이 없어라.

 

상림의 연밭
상림의 연밭





 
경남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3)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윤위식
-작가의 해명-
편집으로 원본에서 삭제된 부분이 많아 뜻의 연결이 되지 않아서 몹쓸 글이 되었습니다. "윤위식의 블로그"에 원문을 실으니 꼭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2015-12-13 22:05:29)
윤위식
깊숙하게 들어온다. --삼복을 등에 업고 껍죽거리며 권세깨나 부리더니만 기세를 꺾고 무릎 앞에 다가와서 따사롭게 비비댄다. 포용이 불러온 화해일까 배려가 상통한 화합일까, 뿌리고 가꾼 사람들이 이제는 거둘 수 있는 때이다. 부대낌이 두려우면 시작을 할 수 없고 버거움을 두려우면 맞설 수가 없다. 여기쯤에서 돌아보면 또 다른 앞이 보일까싶어서-- 두문동 72현 중의
(2015-09-16 08:04:11)
윤위식
작가의 변: 글이 편집이 돼서 뜻이 어긋났다. -기구한 팔자인가, 속절없는 운명인가. 잎이 저야 꽃이 피고 꽃이 저야 잎이 피니 애달프고 가련한데 이 티 저 티 묻어두고 우아한 자태로 곱디고운 상사화인 선홍빛 꽃무릇이 지천으로 피고 있어- 상림의 숲속은 또 다른 별천지다.
지곡면사무소 방향으로 들면 - 금방 닿지만 시시각각으로 풍광을 달리하는- 함양 상림의 정취에 젖으며
아직도 모르는가!- “쾅!” -하고 단상을 한

(2015-09-16 08:01:09)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