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의 자유
시공의 자유
  • 경남일보
  • 승인 2015.09.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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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이 (경남수필문학회장)
이동이
아침 공기 가득한 기차역. 많지 않은 사람들이 드문드문 의자에 앉아 기차를 기다린다. 어디론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하여 이른 아침부터 짐을 꾸렸나보다. 빛바랜 빈 의자에 다가가 몸을 기댄다. 느닷없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는 마음이 소용돌이칠 때면 역사를 서성거리고 사념을 풀어내는 그 거리만큼의 장소를 목적지로 잡는다. 그 공간 속에 편안히 나를 풀어놓고 싶음이다.

선로의 곡선을 지날 때마다 기차는 이음매를 삐걱거리며 몸을 조금씩 비튼다. 휙휙 지나가는 선로 바닥은 내가 떠나고 있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느끼게 한다. 기차는 늘 시간 속을 달린다. 오래전 어느 찻집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설레기도 한 아련한 그리움 곁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오래전 시간이 임박해 어쩔 수 없이 입석표를 구한 적이 있었다. 기차에 올라섰을 때 종착지까지 장장 다섯시간을 서서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맥이 풀렸다. 한 30여분을 서서 갈 무렵 주변 승객들은 견디기 힘들었는지 좁은 공간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긴 시간 힘들게 서서 버티기보다는 편하게 가는 편이 현명할 것 같아 나도 적당한 곳에 앉았다.

그때, 승무원이 다가와 일어서라고 했다. 순간 얼마나 민망했던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통행에 불편을 주어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려는데 웬일인지 다른 객실의 빈자리까지 안내해 주고는 종종히 걸어갔다. 엉겁결에 따라가 앉긴 했지만 영문을 몰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둠이 깊어갈수록 하나 둘 나뭇가지에 별들이 매달리기 시작했다.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명멸하는 별빛을 바라보다가도 자꾸만 출입구로 눈길이 갔다. 한번쯤 지나가면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겠건만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그후 기차만 보면 지극히 친절했던 승무원이 생각난다. 누군가는 떠나고 또 누군가는 떠난 것을 그리워하듯 이 계절, 난 바람의 자락에 매달려 들녘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같은 여린 음계를 찾아 나선다. 창가에 뿌옇게 꽃 핀 성에를 손수건으로 닦으면 그날의 추억도 묻어 나온다. 상행선 표를 끊었지만 생각이 머무는 곳에, 혹은 마음이 이끌리는 곳에 잠시 내려 그곳을 거닐다 다시 돌아오려 한다.

공간적인 자유, 일상에서 자신을 위해 겨를을 찾은 이 순간은 내게 새로운 순간의 상징이 되기도 하니까.
이동이 (경남수필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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