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목욕탕
동네 목욕탕
  • 경남일보
  • 승인 2015.09.1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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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섭 (중소기업진흥공단 홍보실장)
이창섭
주말에 서울 집에 올라가게 될 때면 동네에 있는 목욕탕을 자주 가곤 하는데 갈 적마다 어린 시절 목욕탕에 얽힌 기억이 나네요. 부끄럽게도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여탕을 다녔던 것 같습니다. 여느 경상도 아버지들처럼 아버지는 어린 아들은 둔 채 혼자 목욕탕을 다니셨습니다. 당시 제 위의 두 형은 객지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아버지와 나이차가 많이 나 어쩔 수 없이 어머니가 제 목욕시키는 것을 맡으셨지요. 어머니 따라서 광주리에 목욕용품 넣어서 두 주에 한 번은 목욕탕을 갔었습니다.

여탕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지 짐작이 가시죠? 지금 생각하니 남사스러운데 초등학교 여짝꿍은 물론이고 동네 누나들까지 다 만났습니다. 일요일 오후 목욕탕은 동네 사교장이었으니까요. 이구동성으로 “아니 저렇게 다 큰 사내 아이를 여탕에 데려오면 어떡하세요?”라는 핀잔을 어머니는 주변으로부터 많이 들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겸연쩍어 하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참고로 저 초등학교 1학년 때 키 114센티였습니다. 목욕하기 싫어했던 작은 형은 때를 밀어주면 울고 불며 난리법석을 부리면서 자기 몸의 때 도로 붙여 놓아라고 했다는데 저는 아무 소리 안하고 얌전하다고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목욕 후에 꼭 삶은 계란을 사주셨습니다. 그게 참 맛이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 조그만 목욕탕이 있습니다.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을 저는 ‘목욕탕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이발사, 세신사 그리고 청소하시는 분까지 모두 세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욕탕에 가서 보니 세신사 아저씨가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어린 친구의 몸을 온갖 정성을 들여서 때를 밀어주고 있었습니다.

목욕을 하며 들려오는 두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린 친구는 바로 세신사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은 아빠의 직장을 방문한 것이고 아빠는 또 그 아들의 때를 아주 정성껏 밀어 주고 있는 것이었죠. 일요일 아침 목욕탕에서 만난 두 부자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더군요. 사람의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하지만 행여나 목욕탕에서 같은 학교 친구라도 만나면 어린 마음엔 불편해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린 친구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모습으로 아버지와 두런두런 즐겁게 대화를 하더군요.

눈매가 분명하고 똘똘한 생김새로 봐서 그 아들은 아마 공부도 열심히 그리고 잘 할 것 같았습니다. 저보다도 젊은 그 세신사 아저씨는 매주 하루를 빼고는 목욕탕에 출근해서 늘 활기찬 모습으로 씩씩한데 그 원동력은 어린 아들을 위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분명하다고 느꼈습니다. 아버지랑 같이 목욕탕에 가본 기억이 없는 저로서는 그런 모습이 부럽다는 생각도 들면서 어머니가 사주시던 삶은 달걀 생각도 들더군요.

시간이 흘러 어느덧 저도 딸과 아들을 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다가오는 주말엔 아들을 데리고 동네 목욕탕에 가 등을 밀어줄 생각입니다.
이창섭 (중소기업진흥공단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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