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리포트]어머니와 함께 한 네팔순례
[시민기자 리포트]어머니와 함께 한 네팔순례
  • 경남일보
  • 승인 2015.09.23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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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진주여고 출신 80세노모와 찾아간 히말라야
정형민 시민기자


어머니는 1934년생, 그러니까 한국 나이로 여든 하나, 만으로 여든 살이다. 일찍 남편을 떠나보내고, 자식들을 키우시느라 평생 해외 여행 한번 하지 않으셨다.

가까운 동남아나 일본은 커녕 온천이라도 가자고 하면, 괜한 돈 쓴다며 가시려고 하지 않았다. 일제 시대와 한국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이 그렇듯, 자기 한 몸을 위해서는 돈을 쓸 줄 모르고 억척스럽게 살아오셨다. 그런데 무척 건강하셨던 분이 재작년 겨울, 한쪽 눈이 거의 실명 상태가 되는 위험한 상황을 맞았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지만, 그때부터 고혈압으로 고생을 하고 계신다. 그런데 작년 가을, 네팔로 떠나는 나를 따라 집을 나서셨다. 그때가 어머니의 생애 첫 해외 여행이다.


 
어머니 이춘숙여사


목적지는 무스탕 왕국의 관문인 해발 2900m, 까그베니 마을이었다. 어머니는 그곳에 600년 된 사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곳에 가서 기도를 드리고 싶어하셨다. 여든 살의 노모를 모시고 네팔로 떠난다니, 주변에서 반대가 심했다. 더구나 어머니가 눈 수술을 받았던 병원의 담당 의사 선생님과 어머니가 자주 가는 한의원 선생님까지 걱정을 하시는지라 내심 갈등도 컸다. 하지만 기회를 놓치면 어머니와 뜻 깊은 여행을 영영 못할 것 같아 하늘의 축복을 기원하며 네팔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9월 1일, 비행기는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에 카트만두의 트리뷰반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공항을 나서자마자 바로 옆에 위치한 국내선 공항으로 이동해 작은 경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네팔의 국내선 항공기들이 모두 프로펠러로 움직이는 소형 비행기이긴 하지만, 우리가 탑승한 심릭 항공사의 비행기가 그 중에서도 제일 작다. 그런데 어머니는 네팔 체질이신가보다. 한국에서는 차만 오래 타도 멀미를 심하게 해서 버스도 못 타는 양반이 아주 재미있어 하신다.

포카라에 도착한 후, 일단 여행자 구역인 레이크사이드에 위치한 ‘삼파다 인’이라는 호텔에 짐을 풀었다. 붉은 고벽돌과 네와르 양식의 목조 기둥을 조화롭게 배치해서 만들어진 고풍스러운 모습의 호텔이다. 혼자 여행할 때에는 보통 1000루피(한화로 1만원 정도)를 넘지 않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지만, 어머니와 함께 하는 첫 해외여행인만큼 멋진 호텔을 잡았다. 사실 포카라에도 10만원을 훌쩍 넘는 수영장이 달린 고급 호텔도 있지만, ‘삼파다인’은 25달러(한화로 3만원)에 머물 수 있다. 어머니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테라스에 나가 ‘마차푸차레(6993m)’를 향해 연신 절을 하신다. 마차푸차레는 네팔 사람들이 신성시 하는 산으로 등정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히말라야에서 유일하게 미등정 산으로 남아 있다.



 
네팔 포카라의 여행자 구역인 레이크사이드에 위치한 ‘삼파다 인’이라는 호텔. 해외 여행이 처음인 어머니와 건강을 위해 호텔을 잡았다. 하루 숙박비는 우리돈으로 1만원이다.

 


포카라에서 한 달 정도 세상 모든 근심을 내려놓고, 어머니와 산책도 하고, 시장에도 가고, 6000원짜리 스테이크도 먹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골동품 가게에도 들러 네팔 전통탈을도하나 샀다. 한창 성수기를 맞고 있는 포카라의 청명한 하늘을 형형색색의 패러글라이딩이 수놓는다. 포카라에서 유유자적 지내다 보니, 한 달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까그베니 여행을 차일피일 미루고 페와 호수를 바라보며 독서 삼매경에 빠져 지냈다. 그러다 10월 14일, 안나푸르나의 토롱라 패스(5416m)에서 눈사태 소식이 들려왔다. 갑작스런 폭설과 눈사태로 20명 이상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실종되는 대형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우리의 목적지인 ‘까그베니 마을’은 토롱라 패스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일단 더 이상의 인명 피해가 없기를 기도하면서 상황을 지켜봤다.


 

까끄베니사찰


일주일 후, 어머니께서 ‘까그베니 마을’로 가자고 하셨다. 토롱라 패스에서 희생된 고인들을 위해서라도 가서 기도를 드리고 싶으시단다. 하지만 까그베니 가는 길은 무척이나 험난했다. 좀솜 행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포카라 공항에서 무려 3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더구나 좀솜에서 까그베니까지 히말라야의 거친 비포장 길을 지프를 타고 1시간 가까이 달려야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의연하게 버티며 까그베니에 무사히 입성하셨다. 그리고 1주일을 머무시면서 영원히 잊지 못할 참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다.

그렇게 바라시던 오래된 곰파(사찰)에서 참배도 하시고 까그베니 언덕에 올라 토롱라 패스를 바라보며 고인들을 위해 절도 올리셨다. 어디 그뿐이랴! 동갑내기 구룽 족 친구도 사귀시고, 손녀딸 같은 꼬마 친구들도 만나고,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구룽 족 여동생도 생기셨다. 유럽에서 온 젊은 할머니 여행자들이 어머니의 나이를 알고서는, 어머니 손을 꼭 잡고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그렇게 팔순의 어머니는 길을 떠났고, 그 길 위에서 자연스럽게 주인공이 되었다. 산골에서 텃밭을 일구며, 개와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며 외롭게 지내시던 어머니는 길 위에서 또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들과 가슴과 몸으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강하다. 어머니와 함께 한 첫 네팔 여행에서, 우리 어머니들이 젊은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정형민 시민기자
※다음 회부터 본격적으로 이번 여정을 소개합니다.



 
정형민시민기자
▲ 네팔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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