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의 처음 밥 짓기
초등학교 2학년의 처음 밥 짓기
  • 경남일보
  • 승인 2015.09.2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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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경남도교육청 과장)
김동환
초등학교 2학년 어느 겨울날, 해가 다 지고 어두워질 무렵이었다. 모든 식구들이 외출을 하고 집에는 나와 동생들만 있었다. 배는 고프지만 어른들은 모두 밤늦게 돌아오실 상황이었다. 저녁밥을 해결하기에 막막한 상황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걱정이 태산 같았다. 결국 나 혼자라도 저녁밥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께서 밥을 지을 때 옆에서 불을 지핀다고 자주 보기는 했지만 직접 하기에는 난감했다. 시커먼 무쇠솥 뚜껑은 내 몸집보다 컸고 깊이는 내가 거의 들어갈 정도였다. 어쨌거나 보리쌀 삶아 둔 것을 반원이 되도록 놓고 새로 씻은 쌀도 반대편에 반원이 되도록 놓았다. 밥을 하면 양이 많아지는 걸 모르니 쌀의 양도 밥의 양과 같이 생각해서 앉혔다. 물도 고구마 삶을 때 본 것처럼 쌀의 키 높이 정도로 부었다.

그리고는 나무로 불을 지펴서 불을 땠다. 드디어 김이 나고 밥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조금 더 불을 땐 후 밥이 되길 기다렸다. 내 생각에는 밥이 잘된 것 같았을 때쯤 할아버지께서 먼저 도착하셨다. 부엌문을 열어 보고 누가 밥을 했느냐, 혹시 건너 마을 숙모가 다녀갔느냐고 하셨다. 제가 밥을 했다고 말씀드리자 할아버지께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몇 번 확인하셨다.

한참 후에 도착한 어머니는 손도 못 씻고 부엌으로 달려가셨다.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나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는 어머니께 내가 밥을 해 두었다고 자랑스럽게 말씀드렸더니, 나를 한참 바라보며 감동하는 것 같았다.

“정말 니가 밥을 했다는 말이가?” 믿어지지 않는 것처럼 하면서도 눈물을 글썽이셨다. 어린 녀석의 무리한 도전이지만 엄청 기특했던 모양이다. 할머니께서도 “앞으로 저 애가 무얼하려고 하면 모두 밀어주어라”고 하셨다.

물론 내가 했던 엄청난 양의 고두밥은 약간의 손질이 있은 후 며칠 동안 먹어야 했지만 아무튼 그날의 뿌듯한 감동은 잠자리를 설치게 할 정도였다.

그때 나의 어린 시절 과감한 도전으로 얻은 성공의 경험과 주위의 감탄은 나의 도전정신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특히 성장과정에서 이런 성공경험이 반복된다면 그 효과는 일생동안 로켓의 추진체와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동환 (경남도교육청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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