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언니로 살아간다는 것
큰언니로 살아간다는 것
  • 경남일보
  • 승인 2015.10.0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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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근 (수필가·지리산힐링시낭송 대표)
김태근
이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왔을 때,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큰언니’라고 말했다. 다섯째 딸인 내게 큰언니는 부모님, 아니 그 이상의 존재였다. 추석이나 설날이 다가오면 마을 입구에 나가서 큰언니를 기다렸다. 어느 해 추석 때는 큰언니가 블라우스를 사왔는데 머리맡에 두고 잠이 들었다. 일찍이 주경야독하며 자신은 먹을 것, 입을 것을 아껴가며 동생들을 하나같이 보살펴주었던 큰언니다. 내가 방년이 지나서 직장을 다닐 때도 큰언니 집에서 살았다. 결혼을 하고서 첫아이와 둘째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내 몸조리를 한 달 이상이나 해 주었다. 아이 둘 다 태어나자마자 큰언니 손에서 자랐다. 나를 업어주었던 큰언니가 내 아이까지 업어주었다.

이번 추석에 만난 큰언니는 건강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도 함께 손을 잡고 아버지 산소에 갈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독야청청 푸를 줄만 알았던 당산나무 같았던 큰언니, 작년 쉰다섯이 되던 해에 뇌경색으로 쓰러져 손가락 하나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 그날 쏟아낸 가족들의 눈물이 하늘에 닿았는지 큰언니는 기적같이 깨어났다. 앞으로는 큰언니에게 내가 받은 은혜의 반의 반이라도 보답하며 살아가리라.

올해도 산청 *동의보감촌에 구절초가 피었다. ‘어머니의 사랑’, ‘순수’라는 구절초 꽃말을 떠올리며 하얀 꽃물결을 바라보니 큰언니 생각이 절로 난다. 제 아무리 배려심이 많다한들 가난한 집 칠남매의 큰누나, 큰언니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구절초’-산음골 동의보감촌에 피어난 구절초/하얀 꽃물결 일렁이며 춤을 춘다/아홉마디 향기를 지니기까지/구구절절 얼마나 많은 사연 품었을까//무슨 사연이 그리도 많아/하필이면 구절초가 되었을고/오가는 이들에게 들녘까지 내어주는 모습이/큰언니의 넉넉한 미소를 닮았구나//코흘리개 철부지들 업어 키운 큰언니/어찌하여 가난한 집 칠남매 큰언니 큰누나가 되었을까/구불구불 지나온 쉰다섯 고갯길/고개고개마다 흔들리고 넘어진 이야기 저 구절초는 알고 있을까//이천 십 사년 여름, 갑자기 쓰러진 뒤로/병원과 친해진 큰언니/하얀 구절초 꽃물결처럼/환하게 환하게 다시 피어나리라. *동의보감촌: 산청 한방약초축제가 열리는 곳 /
 
김태근 (수필가·지리산힐링시낭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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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24 13:58:37
희생하는 큰언니나 그모습을 알아주는 가족들이나 훈훈하네요 모두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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