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전통예술축제 맛보기 (13)고성 월이민속극
경남전통예술축제 맛보기 (13)고성 월이민속극
  • 김철수
  • 승인 2015.10.12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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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기생 월이의 나라 구한 이야기 민속극으로 꾸며
 
고성 월이민속극


고성월이민속극은 임진왜란 당시 당항포해전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기생 월이에 대한 충절과 애국정신을 극으로 재현한 전통예술작품이다.

◇유래

고성(固城)은 오래된 도시다. 고성이란 지명은 신라 경덕왕 16년(757) 때부터였으니 지금(2015년)으로부터 1258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도시다. 그 이전에는 고자미동국(삼국지위서동이전), 고자포와 고자군(삼국사기), 고자국과 소가야(삼국유사)란 지명이 있었다.

이처럼 오래된 도시에는 숱한 전설과 설화가 있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고성에서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것이 있으니 바로 기생 월이에 관한 이야기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년 전이었다. 조선 선조 임금 때의 일이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노부나가에 이어 풍신수길이 일본의 60주를 통일하자마자 대마도 도주 종의주에게 명령하여 조선국왕으로 하여금 일본에 입조토록 한다. 그러자 선조 21년 12월에 종의주는 소서행장, 가등청정과 의논한 후 자신의 아들 종의지를 비롯한 도정종실과 함께 현소를 일본의 왕사를 삼아 조선에 파견했다.

이때 현소는 종의지와 상의하여 믿을만한 사람을 선발해 승려로 위장하여 조선의 남해안과 서해안의 포구를 염탐토록 첩자의 임무를 맡긴다. 그의 이름은 고바야시 히데오였다. 첩자가 맨 처음 상륙한 곳은 울산이었다. 울산에서 부산, 김해, 마산을 거쳐 도달한 곳은 고성. 그는 고성의 이곳저곳을 샅샅이 둘러보고 무기정이란 술집에서 하룻밤을 유숙하여 그곳에서 월이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는 월이의 미모에 반해 술을 함께 마시게 되나 자신의 임무가 워낙 중차대하여 후일을 기약하고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게 된다.

1년 후, 그는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일본으로 귀향하는 중간에 고성에 들려 작년에 못다 한 월이와의 연정을 마음껏 푼다. 그날 밤, 월이는 첩자가 아무래도 조선사람 같지가 않아 그가 잠든 사이 그가 지닌 소지품을 뒤져보다가 깜짝 놀란다. 그것은 첩자가 지닌 지도 때문이었다. 지도에는 고성의 이곳저곳이 표시되었고 특히 바다의 지형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순간 월이의 뇌리에는 ‘이 작자가 우리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첩자로구나’하는 생각이 떠오르자, 왜놈들은 월이의 부모를 죽인 원수였기에 월이의 적개심은 부글부글 끓어올라 월이는 손에 든 지도에다 붓을 들어 뱃길이 없는데 마치 뱃길이 있는 것처럼 표시를 해 놓았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첩자는 일본으로 돌아가 지도를 현소에게 바쳤고 현소는 풍신수길에게 바쳤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92년 6월 5일 일본 수군은 고성 당항포로 쳐들어왔다. 일본 수군은 월이가 그린 지도를 따라 소소강으로 들어갔으나(지금의 송학리 하수종말처리장) 뱃길이 없는 것을 알고 되돌아 나오다가 간사지 일대에서 거북선을 거느리고 기다리고 있던 이순신 장군의 함대에게 궤멸을 당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제1차 당항포해전의 실체다.

제1차 당항포해전의 일등공신은 뱃길이 없는데 마치 있는 것처럼 속인 월이였고 소소강(고성천)이 흘러드는 소소포일대인 마암면 두호리, 거류면 거산리 일대를 당시 일본인들은 속았다하여 ‘속시개’라 부르게 된 것이 그 연유다.


 
고성 월이민속극
고성 월이민속극


◇ 특징
지난 수천 년 간 세상은 남성 우월사회였다. 하지만 천지만물의 조화가 음양의 조화에 있듯 여성 없는 남성은 있을 수 없다. 오늘날 여성의 지위는 남성의 지위 못지않다. 과거 우리나라 역사에 보면 뛰어난 훌륭한 여성이 많았다. 유화부인을 비롯해 소서노, 허황옥, 도미의 아내, 선덕여왕, 선화공주, 천추태후, 기황후, 신사임당, 임윤지당, 황진이, 허난설헌, 주논개, 명성황후 등등 그 이름을 다 열거해도 모자람이 없을 지경이다. 고성의 기생 월이도 이들 여성 못지않은 인물이었음에도 단지 기록이 없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열거한 여인들 중에서 월이와 비교할 수 있는 인물은 단연 논개다. 월이와 논개는 둘 다 기생이었다. 논개는 적장 하나만 안고 죽었지만 월이는 26척의 왜의 함대와 약 3000명의 왜 수군을 몰살시키는데 일등공신이었다. 논개와 월이의 차이가 있다면 기록이다. 논개는 정사에 기록은 없고 단지 유몽인이 쓴 ‘어우야담’이라는 야사에 한 줄 기록이 되어 있다. 당시 유몽인은 광해군의 지시로 암행어사가 되어 관찰사(오늘날 도지사)가 있는 진주로 감찰 왔다가 항간에 떠도는 논개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책에 기록으로 남겼다. 만약 유몽인이 고성으로 왔다면 월이에 대한 얘기도 기록으로 남겼을 것이다. 기록이 그만큼 중요하다. 월이의 이야기는 구전 중의 구전이다.

◇ 발굴 과정

고성에서 오래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월이의 이야기가 2012년 향토작가(정해룡)가 소설화해 발간하면서 알려졌다. 월이가 실존했던 인물인지 아닌지, 또 왜군이 속았다고 하는 ‘속시개’로 왜의 함대 26척이 들어왔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당시 고성의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샅샅이 찾아 발굴해 놓은 이 소설에서, 작가는 이순신 장군이 쓴 ‘당포파왜병장’에서 “소소강 서쪽에 이르니 적의 함대 26척이 정박해 있었다”는 기록에서 그 단서를 찾았다고 한다.

소소강 서쪽은 지금의 간사지 일대를 말하며 왜의 함대는 월이가 그린 지도에 나오는 소소강을 따라 고성읍 쪽으로 갔다가 길이 없어 되돌아오던 중에 소소포에서 이순신 장군에 의해 일망타진 된 것이다.

고성에서도 이제 당항포해전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월이에 대한 발굴과 그 계승 작업이 필요하다. 그 일환으로 시도되는 것이 ‘월이 민속극’이다. 이를 통해 그날의 월이를 재현하여 충절을 기리고 애국정신을 함양하고자 하는 뜻에서 ‘월이 민속극’이 시도되고 있다.

◇고성 월이민속극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정해룡 ▲연출:허덕순 ▲사회:이용재 ▲첩자중:강부관 ▲월이:천귀순 ▲주모:황후자, 이창호 ▲악사/소리:신명균, 남상은, 하모니, 최재상, 정혁상, 박성진 ▲기생:유여정, 강혜련, 정숙인, 김미자, 김은영, 정만선, 신미나 ▲마당쇠:박정남 ▲불구아들:김상명 ▲윗동내·아랫동내 사람들:김도선, 강옥선, 이영순, 정현순, 백경숙, 김갑례, 임정숙, 장무순, 이병숙, 정경자, 유순임, 이선미 ▲스탭:이용호, 이춘수, 이판철, 서금석, 최영도
자료·사진 제공=고성농요보존회, 고성/김철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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