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진해 도만이들 육전대의 총칼은 어디 갔나?
[경일포럼]진해 도만이들 육전대의 총칼은 어디 갔나?
  • 경남일보
  • 승인 2015.08.12 2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점석 (창원YMCA 명예총장)
진해 중원로터리 인근에는 여좌천을 복개해 문화거리로 조성한 구간이 있다. 복개구간 중 창선교 옆에는 지난 2월에 문화체육관광부의 도시관광 활성화사업의 일환으로 창원시가 설치한 조형물이 있다. 얼핏 보아도 세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우격다짐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조형물의 제목은 ‘도만이들에서 일본 육전대를 쫓아내다’이며 “일본 군인들과 측량사들이 군항예정지 획정을 위해 측량을 하고 있을 당시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측량기구를 넘어뜨리고 주먹다짐을 하는 등으로 일본 측량사와 일본 군인을 쫓아낸 우리 민족의 항일정신을 기리기 위한 조형물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육전대가 무엇인지, 주동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조형물의 군인은 주먹다짐만 한 걸까. 총칼은 왜 갖고 있지 않은지가 궁금했다. 육전대는 해군소속인데 상륙부대원들로 구성된 지상 전투부대였다. 러일전쟁 때에는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이완희 PD가 쓴 ‘한반도는 일제의 군사요새였다’에 의하면 진해에 군항을 설치하기 위한 일본의 준비는 을사늑약이 체결된 다음 달인 1905년 12월부터였다. 일본정부는 오카노 후지마츠 해군중좌을 비밀리에 보내 토지의 관유, 민유 여부와 매수금액 등을 파악하도록 했다. 이때 임의로 측량하다가 주민들의 반대로 쫓겨났다는 기록이 있다.

1905년은 한국침략이 본격화되던 해였다. 1월 여순·봉천 점령, 5월 러시아 발틱함대 격파, 7월 미국과 가즈라-테프트 밀약, 8월 제2차 영일동맹, 9월 러시아와 포츠머스 강화조약 체결 등 열강의 동의와 양해를 얻음으로써 한국침략의 독점권을 확보한 일본은 11월에 을사늑약을 폭력적으로 강요, 통감부를 설치했다. 마치 러일전쟁의 전리품처럼 대한제국은 일본의 보호국이 되고 말았다.

1906년 3월에 초대통감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는 곧바로 ‘한국 시정개선에 관한 협의회’를 만들고 진해만에 군항을 설치하기 위한 회의를 주재했다. 결국 고종황제의 재가를 받아내고 8월 27일 관보를 통해 공식화했다. 한·일 양국의 관리들로 진해만 군항지조사위원회를 구성, 진해에 파견했고 측량활동을 시작했다. 이때 현장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칼을 꽂아놓고 일본 헌병들이 총을 세워 잡고 측량을 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일본 군인들을 배치하는 등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했다.

그런데 조형물에는 총칼이 하나도 없다. 윗도리 단추까지 풀어져 있어서 마치 주먹다짐처럼 느껴진다. 명백한 역사왜곡이다. 진해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언짢아할까 봐 일부러 총칼을 빼버린 것이라면 크게 잘못한 것이다. 조형물을 보는 사람들은 멱살잡이로 오해할 수 있다. 만약 제대로 공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과연 자신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할 것이다. 돈만 많이 받으면 된다 혹은 고종황제가 허락했는데 반대할 수 있는가, 총칼 앞에서 섣부른 행동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근대문화유산을 보면서 우리들은 각자 자신과의 대화를 하는 것이다.

전점석 (창원YMCA 명예총장) 경일포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