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 (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 (2)
  • 경남일보
  • 승인 2015.10.1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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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 (2)

30여 년 전 초가을 어느 날, 나의 이모 최쾌남(최강양지)은 독신을 부르짖는 여성들의 단체인 ‘우먼파워’의 간사자격으로 어떤 연회에 참석해 있었다.

[최강양지, 어서 이리 좀 와봐!]

회원 중 누군가가 빨리 달려올 것을 조급하게 외치고 있었지만 양지는 이미 제 생각의 혼란으로 옆 사람의 뜻에 응할 여유가 없었다.

내 가족이 먹을 음식이나 옷을 짓는 일만하니 여자들의 의식은 솔고 작을 수밖에 없다. 모성과 대비되는 대지의 품성을 활용한다면 여자는 능히 하늘 땅을 거느리고 다스릴 수도 있다. 그런데 여자들 스스로 제 굴레를 떨치는 과감성에 소극적이다. 그저 제 품안의 것만 깔다듬고 지키는 것에 연연하고 있어 안타깝다. 남성 못지않는 여성의 사회성과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는 모였다. 나는 우먼파워의 회원이다. 그런데 지금 나까지 이런 감정의 동요를 느끼다니. 내가 왜 이러나. 여자는 요물이라더니, 나도 그럼 그 복잡다단한 요물의 본색을 드러내는 건가?

양지는 당황해서 벌렁거리는 가슴을 누르다가 달아오른 얼굴이 친구에게 들킬까봐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자신도 살아있는 가슴을 가진 여자라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우둔우둔…. 그녀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누르며 호흡을 크게 조절했다. 눈까지 깊이 감아 보았지만 혼란은 수습되지 않았다. 이건 모순이야. 이런 모순이 내 속에 숨어 있었다니.

당황스럽기 짝 없는 자신을 나무라며 양지는 물끄러미 거울 속을 들여다본다. 키 백 오십칠의 바싹 마른 여자. 주근깨만으로도 춥고 외로워 보이는 작은 얼굴. 딴에는 제법 성장을 했으나 거리의 악사처럼 어설퍼 보이는 맵시. 여자의 열등감어린 시선이 거울 밖의 양지를 훑는다. 내게도 순화처럼 저렇게 아름다운 날은 있을까. 어색해 하는 양지에게 거울 속의 여자가 흥분된 가슴을 누른 채 말한다. 인생은 살아있는 자들에게 보이는 예, 라고 누군가는 말했지. 그래 삶은 살아있는 동작의 연속일 따름이야. 내게도 현태가 있어. 그렇지만 오지 않아야 할 자리였어. 이건 배신이야.

깃 푸른 젊음을 휘날리며 맹세했던 약속도 무시하고 ‘우먼파워’는 이제 와해 직전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인격을 가진 계집애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하긴 늙은이 어서 죽고 싶다는 말이나 처녀 시집 안 간다는 말은 옛날부터 낙인 받은 거짓말이랬다. 하나 둘, 회원들의 변신을 목격할 때면 너무나도 표리부동한 그들의 언사에 역겨움이 솟았다. 행복해하는 순화를 변절자를 성토하는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던 ‘우먼파워’의 회원 몇은 벌써 자리를 뜨고 없다.

양지도 가만히 저 여자 김 순화의 속옷을 비집고 맨살의 지체를 더듬어 본다. 똑 같다. 여자로서의 신체구조 어느 것 하나 다른 것은 없다. 목이 탔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배신자. 그러니까 ‘여자가 뭐 별수 있어?’ 하고 업신여김이나 당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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