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 (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 (3)
  • 경남일보
  • 승인 2015.10.13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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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 (3)

많이 화가 난 회원 몇은 아예 참석하지도 않았다. 속 좁은 여자들이란 소리 안 들으려면 참석은 해야지. 아주 태연하게 당당하게 대처할 필요는 있어. 양지는 메마르고 강단 있는 음성으로 주장했었다. 그러나 굳세고 단단하다 확신해 마지않던 마음은 어이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저 여자 김 순화가 갖고 있는 것, 어느 한 가지 빠짐없이 나도 갖추고 있건만…. 마른 입술에다 자꾸 침을 바른다. 몸의 아주 깊은 곳에서 둔중한 아픔이 인다. 도저히 현실인 것 같지를 않은 저 상황. 게울 것 같은 이 부러움. 남부러울 것 없는 자리에서 투쟁보다는 사랑하며 화목하게 사는 것은 사람들 모두의 로망이다. 이 목마른 절규나 몸부림도 사실 그런 최상의 환경을 희구하는 노력 아닌가.

조건 반사의 타진인양 문득 현태, 병훈의 면면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더 강하게 도드라져서 그들을 쓸어버리는 아버지의 환영. 울컥 구토가 치밀었다. 머릿속이 혼란했다. 또 게울 것 같은 메슥거림이 전신의 피부를 거칠게 수축시켰다.

다감하게 파티는 무르익어 갔다.

아름다운 꽃묶음으로 둘러 싼 듯이, 좌중을 지배하고 있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환상적인 불빛, 잔에 어린 각 색 칵테일의 은은한 향취, 화사한 모습의 사람들이 띄워 올리는 생동감 넘치는 폭소. 외롭고 성가신 홀아비 생활을 자처하고 나선 주인공 순화의 남편, 아내의 빠른 귀국을 기원해 달라며 쨍쨍 잔을 부딪는 멋진 저 남자, 아무도 그를 차고 있는 남성의 상징을 떼버리라고 흉보는 사람은 없다.

[요새 젊은것들은 사람도 아냐. 에미가 돼갖고 저 어린것들을 어떻게 떼 놓고 간단 말이야. 공부 그게 대체 뭔데]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는 할머니를 동생인 듯 한 중년 부인이 달래며 들어서다가 양지 네를 발견하고는 주춤하며 입을 다물더니 테라스로 통하는 옆문을 열고 사라져 버렸다.

[저 사람들 분명히 순화네 시집 식구들이지? 저러니까 결혼을 여자들의 지옥이라 하지. 도대체가 며느리 잘되는 꼴을 못 봐요]

[저게 잘되는 거냐, 우리를 몇 번이나 배신해도?]

아까부터 계속되는 난희와 정아의 입씨름이다.

[너도 사실 부럽기는 한가본데 뭐]

[내가?]

[그럼 왜 아까부터 자꾸 화장실은 들락거리는 거야?]

[얘도 우리 몽골이 낑낑대는 것 보면서 그러니. 저 모습 보니까 얘도 속이 뒤틀린 거야]

난희가 나가고 나자 아무 말도 않는 양지의 등을 정아가 툭 치며 안고 있는 강아지 몽골을 들썩해 보였다.

[쟤 보니까 정말 시집가고 싶어 미치겠는 거 있지]

눈가에 번진 아이섀도를 정리하다 말고 몽골의 등에다 볼을 비비며 정아가 히죽 웃어 보였다.

[넌 네 아들 몽골과 같이 있으면 된다고 큰 소리 쳤던 앤데?]

그렇게 정아를 핀잔했지만 제 마음까지 들킨 것 같아 양지는 얼른 비어있는 화장실 안으로 몸을 숨겼다. 심통을 숨기지 못한 정아의 음성이 계속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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