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 (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 (5)
  • 경남일보
  • 승인 2015.10.13 19: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 (5)

남자라는 그 단순하고 폭압적이고 독선적인 동물. 회원들은 진저리 치는 시늉을 했다. 물이 빠진 변기에 다시 채워지는 물소리가 들렸다. 양지는 생각을 앗기고 멍하니 그 소리를 들었다. 누가 우스개라도 했는지 폭죽 같은 웃음소리가 다시 연회장에서 날아왔다. 뒤이은 정아의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렸다.

[얘, 너 먼저 시집가라, 넌 남자도 둘씩이나 있잖아. 현태는 죽자 사자 널 따라다니고 사장아들은 생활도 윤택할거고, 예술하는 남자 멋있지 않니? 이 떡 저 떡 양손에 들고 주물면서 회원들 눈치 볼 것 없어. 입에 딱 맞는 떡 없어서 퉁겨 보는 거 어차피 마찬가지 아냐? 현태 그 사람은 네가 꼭 거둬야 될 사람이야. 네 영혼에 낚인 남자 아냐? 남자의 정복과 소유욕에 반항하는 건 네 자존심이나 오기가 만들어 낸 편견과 오해일 수도 있거든. 내숭 잘 부리는 내 번역물 속 주인공 여자가 딱 너란 말이야.]

최강양지에게 혼이 낚인 남자. 박 현태를 정아는 그렇게 표현한다. 어쩌면 제 삼자의 판단이 맞을 것이다. 양지도 현태의 그 고백을 인정하며 또 굳이 그가 싫은 것도 아니다. 추 여사가 은근히 밀어붙이는 병훈의 존재도 그렇다. 그렇다면 적당한 기회가 올 때까지 저울질을 하는 것인가? 양지는 굳이 정아의 이죽거림을 부인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다시 라이터를 켜는 소리가 났다. 남자, 둘씩이나. 양지는 정아의 말을 건조한 입술로 되뇌어 보았다. 잦아들 듯 어깨가 쳐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의식의 내부에서 이명처럼 흘러오는 어떤 목소리. 데리고 가겠다는 양부모 자리 났을 때 그만 승낙하세요. 여러 해 위탁모 노릇을 했지만 몸 이상하게 생긴 아이를 데리고 가겠다는 사람은 흔치 않아요. 아, 바로 말해서 언내 데린 여자와 결혼할 총각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고요. 아무리 이해심이 많다해도 남이 내 입장 다 이해해 줄 거라고 믿는 것부터 오산이라고요.

양지는 다시 손을 돌려 물 내림 꼭지를 눌렀다. 난 너하고는 달라. 양지는 무엇이 어떻게 왜 다른지 정아가 다그친다면 설명해야 한다. 난감했다. 그러나 꼭 그래야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야, 어서 나와. 순화 쟤 부부 둘이서 안고 키스하고 아이들은 손뼉 치고, 저 봐. 난리 났다. 어서 와, 나 먼저 가 있을게]

문을 열자 발 앞으로 툭 떨어진 꽁초가 연기를 달고 굴러들었다. 꽁초를 주워들고 양지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기대섰다. 어깨가 너무 무거웠다. 기체처럼 흔적 없이 어디론가 잦아들어 버리고 싶었다. 저 친구처럼 나는 왜 솔직해지지 못하는가.

인생이 수학처럼 공식을 세우고 푸는 일이라면 남 못지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가지 않았다. 스케치 여행을 떠나기 전에 저녁이나 같이하자는 병훈의 전화가 왔을 때 그녀는 참 묘한 혼란을 느꼈다. 사실 얼마나 만들고 싶던 기회였던가.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5)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