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리포트]어머니와 함께 한 네팔 순례
[시민기자리포트]어머니와 함께 한 네팔 순례
  • 경남일보
  • 승인 2015.10.18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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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구름을 따라 무스탕에 오르는 일곱 원정대
[시민기자리포트]어머니와 함께 한 네팔 순례 <3>쩰레? 노! 축상!
 
말을 탄 어머니가 탕베를 뒤로 하고 축상을 향해가고 있다.



흔히 ‘무스탕’ 혹은 ‘무스탕 왕국‘이라고 알려진 지역은 실제로 ‘어퍼 무스탕’을 의미하는데, 까그베니 마을에서부터 무스탕 왕국의 수도인 ‘로만탕’을 거쳐 티베트 국경에 이르는 지역을 의미한다. 티베트가 중국에 편입되면서 빠르게 전통 문화의 색채를 잃어가고 있는 반면, 무스탕 왕국은 네팔로부터 어느 정도 자치권을 인정받아 티베트 전통을 잘 보존해왔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폐쇄되어 왔기 때문에 서구 여행자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하지만 다른 트레킹 코스와 달리 무스탕 트레킹은 허가를 받기 위한 조건이 까다롭다. 1인당 500달러의 특별 허가비를 지불해야 하고, 여행 일정이 10일을 초과하게 되면 매일 50달러의 비용을 추가로 내야 한다. 더구나 반드시 가이드를 고용해야 하고, 여행자가 최소 2인 이상이어야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무스탕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장년층 이상의 그룹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다. 그렇다고 무스탕 트레킹이 수월하다고 생각하면 큰일난다.

9월 23일, 오전 8시 30분. 무스탕 순례의 베이스캠프나 다름없던 까그베니 마을을 나선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무스탕 트레킹을 함께 할 우리 멤버를 소개하는 게 예의가 아닐까 한다. 우리 멤버는 어머니와 나를 합해서 모두 일곱 명(?)이다. 먼저 가이드 ‘푸르바’. 네팔 동부의 돌라카 지역 출신으로 26살의 셀파 족인데, 아주 우직하고 착한 청년이다. 촬영을 도와줄 ‘치링’은 까그베니 출신으로 그동안 해외의 여러 촬영팀들을 도와 영화와 광고 작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나와 동갑내기 친구다. 포터로 합류한 29살의 ‘키란’은 포카라 출신으로 태권도 유단자이지만 가정 형편으로 국가대표의 꿈을 접었는데, 인도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다. 마부 ‘카말’은 까그베니 출신으로 우리 멤버 중 막내인데 술을 좋아한다. 마지막으로 ‘짱보’, 까그베니 출신으로, 어머니를 태우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텐데 나이가 15살이다. 사람 나이로 따지면 우리 멤버 중에서 어머니 다음 서열인 ‘넘버 투’가 될 것 같은데... 이래저래 잘 모셔야 할 것 같다.

까그베니 체크포인트에서 디디, 레쓰마, 쁘레나와 작별을 고하고, 목적지인 ‘축상(2980m)’을 향해 출발한다. 까그베니는 무스탕 트레킹의 기점이지만, 묵티나트 트레킹이나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레킹의 중간 거점이 되기도 한다. 체크포인트에서 기념 사진을 찍던 여행자들이 어퍼 무스탕으로 떠나는 우리를 바라보며 부러운 시선을 건넨다.

오늘은 크게 고소 걱정을 할 필요는 없지만, 첫 날인만큼 크게 무리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오늘따라 하늘이 옥빛처럼 푸르다. 1964년 어퍼 무스탕을 여행했던 서구의 한 탐험가는 이곳 풍경을 미국의 그랜드캐년에 비유했다. 정말 그렇다. ‘칼리 간다키’ 강 좌우로 그랜드캐년 같은 풍경이 끝없이 이어진다. 평생 어제 하루 말을 타보았을 뿐인데, 어머니는 벌써 적응이 되셨는지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연신 감탄사를 쏟아낸다.

“아들아, 비도 없는 이곳에서 저 산들이 몇백년, 몇천년 바람에만 깎여 저렇게 되었다니 믿을 수가 없구나!” 처음 보는 이국적인 풍경에 매료돼 2시간 넘게 걷다보니 어느 듯 한 언덕의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엄청난 규모의 사과 농장이 자리잡고 있는데, 얼핏 보기에 몇 년은 더 지나야 수확의 결실을 맺을 것 같다. 무스탕 곳곳에는 이렇게 대규모 사과 농장 개발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사과 농장 옆에서 모두 간식으로 사과를 먹는다. 어머니를 태운다고 고생한 ‘짱보’에게도 사과를 건넨다. 조금 있으니 10여 명쯤 되는 서양 여행자들이 우리 뒤를 따라 언덕에 올라온다. 모두 60~70대의 노인들이다. 어머니께서 박수를 치며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다시 가파른 골짜기를 내려가 숨을 몰아쉬며 언덕에 올라서니 자그마한 ‘탕베’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길 옆에 있는 작은 가게에 들어가서 배낭을 내리고 시원한 콜라를 달라고 하니, 콜라 한 병을 들고 나가더니 계곡 물에 담갔다가 가져온다. 오지에서 시원한 콜라를 찾은 내 잘못이니, 누구를 탓하리! 텁텁한 콜라를 한 잔 마시고 감자를 몇 개 까먹고 나니 눈이 저절로 감긴다. 결국 가게 바닥(그냥 흙 바닥이다)에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 “1시간 휴식!”을 외친 후 단잠에 빠진다.

탕베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강하다. 어퍼 무스탕은 기본 고도가 3000미터를 넘어서 그런지 하늘도, 구름도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진다. 그리고 구름도 정말 하얗다. 한국의 도시에서 보는 하늘과 구름과는 아주 딴판이다. 사방을 둘러보면 어디든 풍경화를 보는 듯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빛깔이 절정을 이룬다. 어퍼 무스탕에서는 모든 것들이 오랜 세월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양 자연스럽다. 심지어 길을 따라 늘어선 전봇대조차 나무가 서 있는 듯 아름다운 풍경의 일부가 된다.

오후가 되니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무스탕 지역에서는 오후가 되면 강풍이 몰아친다. 문제는 흙먼지다. 강풍이 불 때마다 매마른 어퍼 무스탕의 흙먼지가 온 몸을 스쳐간다. 오후 4시가 되기 전 축상에 도착한다. 푸르바와 치링이 내일 일정을 위해 1시간 떨어진 ‘쩰레’(3050m) 마을까지 가자며 은근슬쩍 다그친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을 하자. 오늘은 더 못 걷겠다. 두 사람에게 소리를 지른다. “쩰레? 노! 축상!”

마을 입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는 공용 화장실을 쓰는 방뿐이라, 지친 몸을 이끌고 마을 끝에 있는 게스트하우스까지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저 멀리 땅거미가 몰려온다.

정형민시민기자
※다음 편에서는 “사마르 너머 상보체까지, 여기는 3800미터!”가 이어집니다.


 

무스탕 트래킹 여행중 어머니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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