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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5.10.2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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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이 (경남수필문학회장)
이동이
갑자기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횡단보도의 푸른 신호등은 아직 켜지지도 않았는데 대여섯 명의 학생이 우르르 차도를 가로질러 건너편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신호체계를 믿고 속력을 내던 운전자는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놀란 가슴을 억누르며 학생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내지르니 두어 번 머리를 긁적대고는 휑하니 사라졌다. 장난삼아 한 행동으로 보기엔 너무나 지각없는 태도였다. 더욱이 멀뚱히 학생들을 지켜보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감정 없는 조형물인 것만 같아 오싹했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 요즘 사회인들의 ‘무관심’의 단편인 것 같다. 괜한 일에 관여했다가는 언제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방어기제가 마음 깊이 자리한 탓이다. 90년대 아이들 교과서에 나오던 ‘핵가족화’,‘개인주의’와 같은 단어들이 이제 크게 낯설지 않은 만큼, 우리의 삶 곳곳은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세상이 각박해졌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사고들, 그 기저에도 분명 무관심과 이기주의의 씨앗이 자리하고 있었으리라.

사람은 자신의 전체를 볼 수가 없다. 항상 거울을 통해 비춰볼 뿐이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확실히 아는 사람은 나 아닌 타인이다. 그들은 나의 웃는 모습과 찡그리는 표정을 통해 내 마음을 읽고, 작은 행동 하나에도 시선을 떼지 않고 평가해 나를 일깨워준다. 내가 볼 수 없는 각도에서 나를 보고, 내가 느낄 수 없는 방식으로 나를 느끼고, 나의 판단과는 또 다른 판단으로 나를 이해해 준다면, 그래서 내가 항상 피드백과 관계 속에서 발전해 나간다면 그 삶은 진정 축복받은 삶이다. 하여 조금만 주변을 돌아보았더라면, 관심을 가져주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타인과 시선을 마주해야 함이 우선이다.

때때로 자신의 존재성에 대해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 생각의 끝에 다다르면 나의 존재는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정립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작고 큰 돌들이 서로를 떠받치고 보듬어 돌담을 이루듯이, 모자란 것은 모자란 것이 채워주며 사는 것이 우리 삶의 모습이 아닐까.

푸른 신호등이 들어왔다. 정지해있던 시간이 흘러가듯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와 호흡을 맞추며 나아간다. 서로를 인식하고 신호를 주고받으며 나아가기에 오늘도 안전하게 목적지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동이 (경남수필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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