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1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13)
  • 경남일보
  • 승인 2015.10.2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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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13)


이제 아버지는 자신의 표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수록 기분이 상했다. 아버지는 죽어서 백골이 되도록 자식들에게는 언제나 이기적이고 독선적이고 추상같아야 했다.

냉장고를 열었으나 반찬 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예상 못했던 것도 아니면서 약간 낭패스러웠다. 멀지 않은 곳에 가게가 있고 졸며 깨며 뚱보여자가 가게를 지키고 있을 것은 알지만 애써 거기까지 가고 싶은 마음은 일지 않았다. 양지는 한 공기의 쌀을 씻어 밥솥에 앉혀놓고 냉장고 속에 든 계란 그릇을 들어냈다. 그릇에다 계란을 깨뜨려 젓다말고 사잇문을 드르륵 열었다. 또 ㄱ뭉쳐진 아픈 기억이 스치고 지나가 아버지를 마음 편하게 그냥 두고 싶지 않았다.계란을 대하는 순간 뭉쳐진 아픈 기억이 스치고 지나가 아버지를 마음 편하게 그냥 두고 싶지않았다.

[엄마 약은 안 떨어졌어예?]

[아니-. 안즉 많이 있던 걸로]

[많이 있어요?]

그럴 리 없다는 표정을 짓자 자신 없이 휘어졌던 아버지의 시선이 딴 데로 슬며시 돌아갔다. 양지는 제 짐작에다 긍정의 동그라미를 치면서 아버지의 무성의한 대답을 향해 고까운 질문을 던졌다.

[엄마 약 안 잡숫죠?]

[몰라, 생각나모 묵고 이자뿌리모 그만이고. 빙충이 겉은 기 것도 약값 애낀다꼬 청승 떠는 긴지…….]

아 실수, 싶었던지 무람없이 터져 나오던 비난을 뚝 자르며 아버지의 입이 꼭 다물렸다. 양지는 울컥 역정을 냈다.

[엄마 성질 몰라서 그랍니꺼. 단단히 권하시죠. 가족이 있다면서, 하긴 엄마한테는 모두가 골칫덩어리일 뿐이죠. 자기 몸 위해서는 병아리 한 마리 고울 줄 모르는 엄마한테 우리는 가족도 뭣도 아니라구요]

[그러케 내 말이 그 말 아닌 가배. 임자 몸 성한 기 우리 쾌남이랑 자슥들 생각는 기라꼬 그리 일렀건 만도 당최 쇠귀에 경 읽긴 거로 낸들 우짤기고]

뒤말리는 대화 때문에 어쩔줄 모르던 아버지가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화제를 돌렸다.

[참 최 쾌남이 네 이름 앞에 강자 하나가 더 붙어서 최강쾌남이라 돼 있던데 그게 뭐꼬?]

몰라도 돼요. 긴 대화를 하기 싫어서 짧게 잘랐다가 양지는 이내 생각을 바꾸어 차돌멩이를 싼 비단보자기를 휘두르는 심정으로 답을 던졌다.

[수 십 년을 같이 살았으면서 엄마 성도 모르세요? 하긴-]

[그럼 내 성하고 니 에미 성을 같이 붙이서 씬단말가? 어허 참, 듣다 듣다 별 소릴 다 듣네. 대국 년에 그런 법이 어데 있노]

[대체 뭘, 얼마나 많은 세상을 아신다고 대국법까지 있네 없네 하세요?]

핀잔으로 들릴 말을 던져놓고 양지는 다시 사잇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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