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16)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16)
  • 경남일보
  • 승인 2015.10.2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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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16)

천연덕스러운 호남의 대꾸를 듣는 순간 안도의 숨이 터뜨려짐과 동시에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솟구치는 습관적인 짜증이 밀려나왔다.

“바쁘다. 용건만 어서 말해”

마른 입술에 침 바를 여유를 찾으며 수화기를 다른 쪽 귀로 돌려댔다.

“언니야, 우짜꼬!”

단박 숨이라도 넘어갈 듯 새로운 국면을 예감시키는 높은 소리를 낸 뒤 연달아서 내지르는 호남의 커다란 목소리가 째앵 귓전을 울리며 흘러넘쳤다.

“너무 기가 차서 말이 제대로 안 나온다, 언니야. 참말로 우짜모 좋노!”

“…”

“그래, 언니한테는 우선 알리지 말까 하다가 언니한테 말 안 하모 어데 할끼고, 또 언제 알아도 알게 될 낀데……”

“그래 알았다니까, 우리 집 일인지 너희 시어머니 일인지 그것부터 말해”

양지는 책상 위로 상체를 굽혀 의지하며 완만한 자세를 만들었다. 굽어진 등으로 비늘이 돋고 비늘 속으로 몸을 숨겨 그녀는 우선 자신을 지킬 보호막을 만든다. 잠시 호남의 말이 중단되고 가쁜 숨소리만 흘러와서 방어벽으로 곤두 선 양지의 신경을 건드렸다. 호남이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건……. 조짐이 심상치 않다. 다시 울컥 채근의 목청을 높이려는데 뒤미처 호남의 새된 음성이 밀려 왔다.

“언니야 글쎄-”

순간 무언가로 뒤통수를 맞은 듯 했다. 하마터면 수화기까지 놓칠 뻔한 충격이었다. 간신히 움켜쥐고 있는 수화기를 들여다보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삽시간에 받은 너무 큰 충격 때문에 분명한 내용도 증발된 채 멍한 상태가 된 것이다.

“지금 니 뭐라캤노?”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언니도 내 마음하고 똑 같쟤? 나도 얼마나 놀랬는지 처음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부지가 소원성취 했대. 그제야 좀 전에 들었던 호남의 말이 하얗게 바래었던 뇌리 속에서 되살아났다. 짐작 가는 일은 없지않았다. 그러나 그 일은 이제 너무나 요원했었다.

“아부지가 소원성취했다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고?”

뜻을 이해 못한 양지의 물음이 딱하고 원망스러운 듯, 쨍하고 격앙된 호남의 대꾸가 금속성을 일으키며 날아와 꽂혔다.

“언니는 몰라? 아부지 소원이 뭔지, 그새 까묵었나?!”

양지는 꾸욱 눈을 감았다. 미간이 주름 잡히며 형언할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든다. 임자가 그렇키 소원이라카모 나도 소원이요. 딸 낳을 줄 알모 아들도 낳을 기요. 죽어도 내 몸으로 내가 낳을 끼요.절대로 딴 몸에서는 안돼요. 이 판에, 이 몸에 저 몸에서 오글오글 자식만 불려 놓으모 믹이기는 뭘로 믹이고 입히기는 또 뭘로 입힐끼요. 어머니의 그 피 맺힌 절규를 잊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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