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붉은 끈
저렇게 단란한 가족으로 산 날이 언제던가
지금은 잊혀가는 기억만큼 느슨해진 끈
서로 흩어져 각개전투를 하고 있다
-나석중(시인)
생존의 방식에서 ‘가족’이란 혈연을 묶는 붉은 끈이다. ‘단란’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렸던 가족이란 말. 두레밥상이 동화처럼 떠올랐다 순간 해체되는 듯한 디카시다. 더듬어보면 멀덕국에 숟가락이 부딪혀도 그저 서로의 얼굴반찬으로 족했던 식탁이 있었지. 하지만 ‘따로따로, 각자’라는 말이 익숙해버린 지 오래지 않은가. 밥을 사료처럼 퍼넣고 마치 위기의 사람들처럼 삶의 현장으로 뛰어드는 우리. 아이는 아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 안부 물을 겨를도 없이 사투를 벌이며 각개전투 중이다. 날로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어떡하든 살아남아야 하는 까닭이다. 수확의 계절, 헛헛한 맘 가눌 길 없는 시인에게 저리 붉은 끈 한 묶음이 집까지 따라와 말을 걸었던 것. 여기는 지금 가을의 복판이다./ 천융희·《시와경계》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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