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와 세심기(洗心機)
세탁기와 세심기(洗心機)
  • 경남일보
  • 승인 2015.11.0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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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평규 (아동문학가)
조평규 
찬물에 손 넣지 않아도 빨래를 해주는 고마운 세탁기. 냄새 나는 양말이며 땀에 젖은 속옷, 심지어 두꺼운 이불까지.

‘힘들어 죽겠다’는 불평 한마디 없이 돌리고 헹구고 탈수하고…. 세탁은 물론 빨래를 말려 주는 건조 기능까지 갖춘 세탁기도 있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먼지를 떨어주고, 살균도 해주며, 불고기(?)집에 갔다 온 사람의 옷에 배어 있는 냄새도 없애 주는 탈취 기능을 갖춘 세탁기도 있고.

얼마 전만 해도 빨랫감을 남강가에 앉아서 방망이로 두들겨 빨래하던 여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어머니한테 구박받은 며느리가 필요 이상으로 시어머니 옷을 두들겼을지도 모른다. 죄 없는 ‘옷’에 화풀이라도 하듯.

옛날에 ‘고무장갑’이 있었는가. 빨갛게 얼다 못해 쩍쩍 갈라진 손을 호호 불며 빨래를 하던 우리들의 어머니, 누나. 얼어 터진 그 손을 오줌에 담그거나 ‘맨소래덤’, ‘동동구리무’를 바르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세탁기가 나오기 전에는 두꺼운 이불이며 담요를 큰 물통에 세제를 풀어 넣고 지근지근 밟아서 세탁을 했다. 그런 노고를 가시게 해 준 세탁기. 이런 기계를 만들어낸 사람에게 큰절을 하고 싶다.

직장에서 정년퇴임을 한 어느 홀아비가 서울에 있는 아들네 집으로 거처를 옮겼단다. 그런데 세탁기를 조작하던 며느리가 고무장갑 낀 손으로 시아버지의 속옷(팬티)을 집어 들고, “속옷은 아버님이 손수 빨아서 입으셔요.”하고 시아버지의 속옷을 비닐봉지에 담아 주더란다.

냄새 나는 홀아비 속옷을 며느리의 알록달록한 속옷(?)하고 함께 돌릴 수는 없었나 보다. 요즘 선보이는 유아용 소형(미니) 세탁기가 있었다면, 그런 설움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옷이며 이불만 씻어 주는 세탁기가 아닌, 때 묻은 마음도 씻어 주는 세탁기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손 재주 많은 분이 그런 세탁기를 만들어 주기 바란다. 세탁기 이름은 내가 ‘세심기’라고 작명해 놓았으니, 기계 만드는 일만 남았다.
조평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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