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1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18)
  • 경남일보
  • 승인 2015.11.0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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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18)

짜증을 내며 서둘러서 전화를 끊은 것이 조금씩 후회스러워져 호남에게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 일을 엄마도 알고 있을까? 기다리는 시간이 몹시 지루했다. 손가락이 톡톡 책상머리를 칠 때마다 가느다란 황금반지가 빛의 환을 그리며 흔들린다.

좀 촌스럽기는 해도 순금으로 했어.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은 비상금 역할도 한다며? 언니야 에나, 진짜 축하한데이. 서른세 번째 생일.

호남은 제 언니가 노처녀인 것이 남이 못하는 개척정신의 표상이라도 되는 듯 호호거리며 몇 년 전 생일에 이 반지를 선물했다. 양지는 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눈길로 손가락에 비해 무거워 보이는 반지를 내려다본다.

호박벌처럼 또 어디로 내달았는지 호남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언젠가 한 번 들렀던 호남이네 집 구조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한동안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기역자의 전형적인 한옥 대청에 감자주색 반다지가 놓여있고 그 위에서 전화기는 사람을 부를 것이다. 전화벨이 울리기 무섭게 제 전화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투어서 달려 나온다던 가족들.

양지는 호남의 시어머니가 전화를 받을 것을 대비해서 신경을 곤두 세워야만 했다. 주름살 숫자와 심술이 맞먹을 것이라는 사돈마나님. 호남이가 결혼을 할 때만해도 ‘불여시’같은 계집애한테 아들자식 뺏겼다고 밥도 먹지 않고 울었다던 집착 강한 모정 때문에 호남의 신혼 생활은 지금도 그리 단란하지를 못하다.

신혼부부의 방으로 베개를 안고 와서 같이 자겠다고 보챘다던 노파는 지금도 아들의 변심은 며느리의 요사함 때문이라 믿고 며느리의 친정식구들까지 싫어하기 때문에 호남의 시집살이를 배려하는 의미로 어머니도 양지도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은 삼가 해왔다.

여보시오. 늙수그레한 음성이 들려오는 순간 눈치 채지 못하게 수화기를 놓아야지 어떤 빌미라도 남기게 되면 영문 모르게 걸려온 전화로 하여 호남은 며칠간이나 정신적인 고문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연전에 호남은 새집을 지었기 때문에 양지는 이제 그 집에 대한 아무런 구도도 잡을 수 없다. 거저 옛날처럼, 넓은 마당가에 배를 깔고 누웠던 누렁이만이 마루 끝에 턱을 고이고 불이 난 전화기를 바라보며 끙끙대고 있다던 미소 흘리게 하는 풍경만을 상상할 뿐이다.

언니의 궁금증이 다 털어놓지 않은 제 말이기도 해서 호남이 역시 전화기 앞으로 뛰어오고 있을 지 모른다. 되짚은 그런 생각이 전화기 앞에다 양지를 비끌어 매 놓았다.

그때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사장이었다.

“왜 무슨 걱정꺼리 있어?”

아녜요. 눈웃음을 지으며 사장을 향해 어깨를 펴 보였다.

“됐어 그럼. 나랑 어디 좀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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