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2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20)
  • 경남일보
  • 승인 2015.11.0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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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20)

멈춰 선 사장이 뜻밖의 발견이라도 한 듯 양지의 손을 담싹 거머쥐고 기분 좋은 웃음을 웃었다.

[친구들이 어찌나 놀리는지. 욕 하지 마. 샤넬 남바 뭐라나, 뭐 나야 뭘 아나. 좋다고들 권하니까 어렵게 사는 친구 돕는 셈치고 하나 샀어]

욕 하지 마. 양지는 사장의 말을 곱새기며 잠자코 웃어주었다. 고삐는 이미 풀렸다. 친구들을 들먹이는 건 구실일 뿐 그녀의 변질은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었다. 질감과 디자인 위주로 옷차림이 바뀐 것은 물론이고 기름때가 까맣게 올라있던 손톱에도 진 다홍에서 은색으로 매니큐어가 바뀌기 시작한지 오래다. 어떨 때는 동물의 발톱을 연상시키게 멋 부려서 가운데로만 가늘게 검정색을 칠하고 나타날 때도 있었다. 값을 묻는 게 촌스러운 단골 미용실도 생긴 눈치였다. 사람의 마음처럼 허하고 무른 게 없다.

그렇습니다. 사장님. 실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만큼 힘들여서 일하고 땀을 흘리는 데요. 마음 속 깊은 곳에는 그런 대꾸가 준비되어 있지만 아직 허리띠를 풀기는 이르다는 경양 마인드를 양지는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상한선이 어디인지 모르긴 마찬가지다.

넓게 터 잡은 공장 전경이 창으로 내려다 보였다. 이전한지 얼마 안 된 신축 공장이어서 조경이며 빈터를 이용한 시설은 정리가 덜 된 어설픈 상태였지만 근로자의 위생을 배려해서 지은 작업장과 기숙사 건물은 회사 간부로서의 자긍심을 여간 뿌듯하게 해 주는 게 아니었다. 남편을 졸지에 잃었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과부로 좌절하지 않고 사장 강 영수가 오늘을 이룩한 것도 따지고 보면 기획실장 덕택이라고 준공식 날 연회장에서 사장은 밝혔다. 최강 양지 실장, 정말 멋져요. 칵테일 잔을 부딪쳐오며 사장의 아들 병훈도 그랬다. 푸지고 화려하게 쓰기 위한 기대가 없다면 사람들은 절대로 고통을 참으면서 일하지 않을 것이다. 여자로서의 사장은 이제 황혼으로 기울고 있다. 수전노는 어리석고 슬프다. 사장은 얼마만큼 사적인 경비를 지출해도 될 노력을 했고 그럴 권리도 있다. 묻어 두었던 여자다움 인간다움을 인정해 주어야할 것이었다.

최 양지, 나는 네가 필요하다. 우리 힘 모아서 남성 위주인 이 사회를 한번 휘저어 보자. 노동쟁의의 실패로 실의에 빠져있는 양지를 찾아와 손을 먼저 내민 것은 강 사장이었다. 어머니와 같은 성이라는 점도 나쁘지 않았지만 옷을 벗기고 성을 확인해 보고 싶을 정도로 남성같은 박력과 활기찬 기상이 더 마음을 끌었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상대라면 거부감 없이 손을 맞잡는 것은 인지상정 아닌가.

반짝거리는 은색 구두를 신고 뒤뚱거리며 앞서 가는 사장을 바라보며 양지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첫돌바기의 서투른 걸음으로 그의 여성성은 달리고 있는지 모른다. 선뜻 감 잡기 어려워서 건의도 충고도 먹혀들지 않는 엉뚱한 방향으로.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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