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2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21)
  • 경남일보
  • 승인 2015.11.0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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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21)

"언니, 전화 받아 보세요"

층계를 다 내려와 현관문을 막 나서려는 데 하양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내려 왔다. 현태일지 모른다. 그런 느낌이 들자 무심코 돌려지던 발길을 걷어 들이며 양지는 상을 찌푸렸다.

"집에까지 따라오지"

"퇴근 하셨다고 해도 시계 보라고 하며 안 믿는데 어떻게 해요. 앞으로는 사람 좀 믿으라고 그러세요"

되레 짜증을 내며 하양은 물러섰다. 누군데 그래? 앞서 가던 사장의 눈길이 돌아왔다. 층계 위의 하양에게 생짜증을 낸 게 미안해서 부드러운 목소리를 지어서 다시 일렀다.

"있는 줄 알고 뛰어 갔더니 없더라고 그래"

전화를 할 사람은 뻔했다. 현태 아니면 명자언니. 이제, 이 시간만큼은 그 누구로부터의 부담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일부러 따는 줄 알고 막 화를 냈단 말예요"

"됐어, 그만하면 네 할 일은 했으니까.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할께. 가세요, 사장님"

양지는 사장의 손을 끌며 앞서 걸었다. 형언할 수없는 목마름이 가슴을 죄어왔다. 명자언니. 현태. 벽같은 그들의 완강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좀 더 일찍 철들었더라면 허기져서 책상머리 귀신이 되었을지언정 특히 명자언니의 호의는 호의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었다.

받아. 네 언니 성남이를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그 애가 불쌍해서 눈물이 나는데……. 자주 와. 너 하나 나 몰라라 할 형편은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말고. 대학생이 된 첫 학기 때, 왈칵 끼쳐든 수치심을 자각할 때까지 양지는 명자언니의 큰언니에 대한 눈물겹고 순수한 애정으로 장학금을 받아들였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들은 수순에 의한 의도적인 사슬이었음이 드러났다. 이제는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선보일 단계라고 나서는 현태의 제의 역시 요즘은 자꾸 마음을 흔들고 있다. 그때만 해도 행복해하는 친구를 보는 순간 그 일은 상당히 구체적인 선까지 양지의 구미를 당겼다. 그러나 아버지를 대하는 순간 세상의 남자들 모두 순화의 남편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달아야만 했다.

무언가 목표 한 노선을 타고 질주할 때는 차라리 한갓지고 편했다. 양지는 전에 없는 복잡한 기로에 자신이 놓여있음을 느끼고 있다. 갑자기 배가 몹시 고팠다. 만사 잊어버리고 배불리 음식을 먹는 즐거움에 빠져들고 싶었다. 서둘러서 사장 차의 문을 열고 몸을 던져 넣었다.

"안 내릴 거야?"

얼마나 시름겨운 시간을 보냈을까. 눈을 떠보니 사장이 문을 열고 들여다보며 웃고 있었다. 상념에 잠겨있는 동안 목적지에 닿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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