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2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22)
  • 경남일보
  • 승인 2015.11.0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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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2  (22)

산처럼 우람하게 떠억 시야를 가로막는 높은 건물들. 차들은 사람에 막히고 사람들은 차에 막혀 우왕좌왕 꾸물거린다. 도심의 한가운데였다. 가로를 물들인 찬란한 네온이며 매장마다에서 흘러나온 불빛들도 시선을 현란하게 어지럽힌다. 시끌벅적 뒤숭숭 들뜬 행인들은 어디론가 꿈결 같은 흐름으로 뒤섞여 간다. 20년 가깝게 이 도시에서 얼쩡거린 셈이지만 양지는 아직 이런 분위기에 서툴렀다. 나와는 거리가 먼 곳이라는 느낌으로 바라보며 자학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자기애를 간직하며 눈 먼 듯 귀먹은 듯 빠르게 지나쳐 버리곤 했던 번화가였다.


차안에서 눈을 감고 무슨 생각을 했던가. 아버지, 명자언니, 정남이, 호남이, 어머니도 생각했고 새로 태어난, 아버지의 결코 행복스럽지 못할 게 뻔한 핏덩이도 생각했던 것 같다. 그저 그들을 두루뭉술한 덩어리로 결속 된 구조물처럼 떠올려 보았을 뿐이었다. 이제는 최소한의 가닥이라도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각단진 매듭은커녕 일은 자꾸 뒤틀어지고 있다는 확인까지.

양지는 갑자기 피로함을 느꼈다. 조금도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지만 마냥 차속에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디든 편한 자리로 어서 옮겨 앉고 싶었다. 사장이 이끄는 대로 손을 맡겼다.

유리벽으로 건물 전체가 둘러싸인 빌딩 앞으로 사장은 걸어가고 있었다. 요술의 성 앞으로 끌려 온 촌뜨기같이 어리둥절한 가운데 사장을 따라가기 위해 발을 내딛던 양지는 멈칫했다. 잘못 왔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음식점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스텐샷시의 철골과 어우러진 통유리의 군더더기 없이 미려한 외양과 폭발하듯 찬연하게 눈부신 상가의 불빛은 그녀가 지금 원하는 그런 냄새나는 상품들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색색의 리본 장식을 매단 즐비한 화분 사이에서 사장이 돌아보았다.

“뭐하고 있어, 얼른 안 오고”

“사장님…….“

“알았어, 상상이 빗나갔다 이 말인데. 좌우간 들어와.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니까”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양지는 저도 몰래 호흡을 모았다. 불빛이 너무 밝았다. 그리고 사방에서 비치는 빛살의 오로라는 질주하듯 삽시간에 진입하지 않으면 튕겨나고 말듯 팽팽한 긴장을 부른다. 그런 느낌은 무엇을 파는 곳이라는 상황판단이 됨과 동시에 그녀를 더욱 당황하게 했다. 운동장만 하다는 표현이 조금도 과장스럽지 않을 정도의 넓은 매장과 거기를 꽉 채웠달 수밖에 없는 즐비하게 진열된 옷들. 호동그란 양지의 눈길과 마주치자 장난스럽게 킥킥 웃으며 사장이 귓속말을 했다.

“맘에 드는 것 있나 찾아봐. 사업가는 치장도 투자더라고. 좀 그렇잖아?“

순간 막대기로 변해버릴 것 같았다. 어처구니도 없었다. 탄탄 믿고 있던 울타리가 허물어진 허망함이랄까, 얄궂게 역습 당한 불쾌함이랄까. 빨갛게 굳은 표정으로 막대기처럼 서있는 양지를 보고 무엇이 재미있는지 사장은 연신 낄낄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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