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2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24)
  • 경남일보
  • 승인 2015.11.0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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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24)

[그래 알았다. 네 중매도 설 테니까 그만 좀 하자 손님들 듣겠다]

양지는 그들의 우정과 농담을 들으며 여자와 변신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본다. 작달막한 키만 어쩌지 못했달 뿐 쌍까풀로 동그랗게 키운 눈이며 창공을 유유히 비상하는 새의 날개 모양으로 문신을 새긴 눈썹, 뿐만 아니라 주근깨가 너덜겅을 이루고 있던 납작코 주변의 열등감 어려 있던 얼굴의 변모를 예전과 비교해 보며 묘한 기분이 되었다.

여자, 여자. 양지는 몇 번 같은 발음을 속으로 뇌어 보았다. 여자라는 절대적인 핸디캡 속에 이런 멋진 반전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얼마나 심각하게 의식하고 있을까. 명자언니도 여자가 아니었다면 지지리 궁상인 당골네와 아내의 북채나 지고 굿판을 따라다니는 반편이 아비의 그저 그럴 수밖에 없는 딸로 천형의 멍에인 가난에 짓눌려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 내 이름은 아직 처녀다. 양지는 혀끝으로 굴려보는 단어 속에다 자신이 여의주를 품고 있는 듯 한 감미로움을 실어본다. 그러나 순간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젓는다. 우먼파워 멤버들, 아직도 거기 소속인 자신의 흔들리는 정체성에 언뜻 경각심이 일었다.

셋이 앉은자리에 차가 나왔다. 강 사장과 송미양장의, 아니 지금의 ‘미미싸롱’ 오 사장은 사업과는 무관한 여담으로 재미있고 고소해 죽겠다며 밥 사주고 술 사주고 교외로 드라이브까지 시켜 준 어떤 남자를 맛있게 씹고 있다. 양지가 표정 없이 듣고 있기에 거북한 육담도 심심찮게 가미되었다.

양지는 그들에게서 벗어나 저만의 막을 치고 착잡한 심정으로 들어앉았다. 여기는 올 곳이 아니었어. 양지의 눈길은 자신의 무릎으로 내려갔다. 뜀박질하는 누런 바느질선이 뿌옇게 탈색된 청바지. 질긴 천의 옷을 즐겨 입는 것도 습관이 된 탓일까. 적당히 낡은 옷 특유의 편안한 착용감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청바지가 집에도 몇 벌이나 있다. 경제적인 이유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감당못할 변화에 의해서 자신이 흩어지고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음이었다.

어떤 변화와 혼란이라도 수용할 능력이 생길 때까지 나는 여자가 아니다. 목표지점에 이를 때까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절대 비굴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아직도 그런 다부진 각오에 철저할 자신이 있는지….

찻잔을 놓고 일어서는 양지를 두 여자가 똑 같이 바라보았다. 주인이 먼저 알아차린 듯 말했다

“아, 화장실은-”

양지는 오 사장이 눈짓하는 곳으로 걸어 가다가 진열대 사이로 길을 꺾었다. 팔 들어가고 다리 꿰어지고 몸에 걸쳐서 부끄러운 곳 가려지면 입는다. 옷에 대한 개념을 양지는 아직 그렇게 밖에 허용하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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