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생몰(生沒)
누워 생각하니
물 길어 나르는 일은 여간 고달프지 않았다
이제, 그 물 버리는 일이 고단하겠다
-황영자(시인)
미국의 천문학자 더글러스 박사는 나무의 나이테를 통하여 태양의 흑점 발생 그래프(11년 주기)를 작성했다고 한다. 침묵으로 발설한 고통과 환희, 그 사연과 이력들이 나무의 역사가 되어 고스란히 제 몸속에 결의 무늬로 새겨졌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무의 생몰연대가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구나.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채우는데 급급하였구나. 어느 지점에선가 비워야 할 날이 왔음에 그 비우는 것조차 쉬운 일 아니겠구나. 이토록 쓰러져 있는 주체 앞에서 시인은 삶의 의미망을 한껏 넓혔다가 요약하는 것이다. 저 한그루의 덧없음이여, 주위가 또 한 번 붉어지는 중이다./ 천융희《시와경계》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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