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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플러스 <131>고령 미숭산왕릉 사이로 가야전설 전해오는 꿈의 산책길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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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19  20: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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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나무 이파리가 반짝이는 가을 길을 오르는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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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신, 정견모주(正見母主)는 하늘의 신 이비가지에 마음이 동해 아들 둘을 낳았다. 첫째 뇌질주일은 고령 대가야의 아진아시왕이 되고, 둘째 뇌질청예는 김해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된다. 양대 가야는 지모신과 천신이 결합해 태어났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정견모주는 일찍이 이진아시로 하여금 가야산과 그 맞은편 미숭·주산, 낙동강이 어우러진 고령 땅을 점지하고 국운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가야는 3∼6세기 고대사에서 시조 이진아시부터 도설지까지 16대 520년간 하나의 세력으로 존속했으나 신라와 백제의 틈바구니 속에 부침하면서 명멸했다. 이로 인해 융성했던 문화를 인정받지 못하고 종국에는 우리에게 잊혀 진 왕국이 돼버렸다.<삼국사기> 승자 기록에 의한 역사의 일방적인 왜곡이거나 오류다.

거기, 그 자리에 잠들어 있는 대가야의 찬란했던 문화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이번 주 명산플러스는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잊혀진 왕국이 돼 버린 대가야의 땅, 고령 미숭산(733m)·주산을 찾아간다. 정상에 서면 가야시조의 어머니 정견모주의 혼이 스린 가야산이 아주 가깝게 보인다.

미숭·주산 산줄기를 따라 분포한 지산리 고분군 사이 길과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축성한 주산성을 걷다보면 뭉게구름같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역사를 몸소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주산∼미숭산간 고분 관광로를 비롯, 불귀의 길, 반룡사의 길, 천제단의 길, 나대치의 길로 이어지는 역사탐방로는 꿈의 산책길이다.

△등산로 대가야왕릉전시관→지산리 고분군(44, 45, 5호 고분)→주산 정상→청금정→반룡사 삼거리→미숭산정상→용리. 9km에 휴식 포함 5시간 소요.

△합천에서 33번 도로를 따라 낙동강 상류를 건너 고령으로 넘어가면 주산에서 흘러내리는 능선에 거대한 대가야고분군이 펼쳐진다.

오전 9시 20분, 왕릉전시관에서 출발한 뒤, 317호분부터 시작하는 고분 길을 따라 오름짓하면 능선에 올라선다. 처음에는 규모가 작은 고분이지만 산으로 오를수록 거대해진다.

주산 가지능선을 따라 줄지어 축조한 대형분과 경사면에 축조한 중소형분 등 5~6세기 고령 대가야를 맹주로 한 후기가야의 고분 700여기가 밀집해 있다.

고분의 주인공은 고령·합천 등 경상도 내륙 산간지방의 농업에 유리한 입지조건과 제철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중심지로 발전한 세력들이다. 동쪽기슭에 대가야 궁성지가 위치해 이들이 왕과 왕족 귀족들의 무덤임을 알 수 있다.

거대한 왕릉과 고분군 사이를 걸어가는 시간여행은 신비롭고 경이롭다. 건너편 땅콩집 모양의 고분의 나신아래 고령읍이 바로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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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 고분군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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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전시관.


44호분은 국내 최초·최대의 순장(강제로 죽여 주된 시신과 함께 묻는 장례 습속)무덤이다. 1977년 발굴조사 시 으뜸돌방을 중심으로 남과 서에 딸린 돌방과 그 둘레에 30개의 순장덧널이 확인됐다.

45호분도 11기의 순장덧널이 확인돼 주군의 죽음에 수십명을 순장했던 문화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5호분은 금림왕릉으로 전해지는 가장 큰 고분이다. 1939년 일제에 의해 발굴됐다. 봉분직경 50m에 달하고 석실크기 9.8m×1.8m이며 금동제호록(화살통), 황어뼈, 금장환두대두, 이형금동제품, 철촉 30점이 출토됐다.

이외 여러 고분군에서 금동관과 금동관장식품 금귀걸이 등의 화려한 장신구와 철제 무기류 마구류 토기류 등 고령양식의 유물들이 출토됐다. 이들은 예술성과 실용성에서 대가야 문화의 우수성과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분이 일제강점기부터 도굴, 훼손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금림왕릉으로 추정하는 5호분을 제외하고는 이름을 갖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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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제 대가야 유물.


주산 정상까지 오르는 고분 관람로가 잘 조성돼 있다. 오전 10시, 마지막 능에서 산으로 가는 길, 늦가을 단풍이 고분군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산허리에 석축산성인 주산성(사적 61호)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주산 정상에선 고령읍 시가지가 잘 보인다. 가야의 시조 정견모주의 혼이 서린 가야산이 코앞이다.

이정표는 미숭산 6km를 가리킨다. 이때부터 꿈의 산책로이다. 중간에 차량이 올라오는 공터를 만나게 되는데 지하수를 끌어올린 샘터와 체육시설, 휴식공간까지 갖추어져 있다. 고령군민들의 숲 체험코스도 조성돼 있다.

오전 10시 54분, 거문고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가 담긴 청금정에 도착한다.

찬란한 대가야의 숨결이 스민 고령읍 쾌빈리(추정)는 악성 우륵이 태어난 곳. 전통악기 가야금발상지로서 군민의 자긍심을 더 높이고자 뜻을 모아 팔각정을 건립해 그를 기리고 있다.

청금정을 떠나면 불귀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잃어버린 대가야를 다시 찾을 수 없는 애절함이 서려 있다는 의미다. 이곳에서부터 반룡사 갈림길까지 내림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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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부르는 청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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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 최대의 5호고분군.


오전 11시 34분, 허투루 지나면 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비석, 천제단 앞을 지난다.

천제단 길은 간절한 기도를 하늘에 전하고자하는 염원의 길이다. 평이하던 등산로가 천제단길에서 고도를 높이면서 산객의 숨소리도 거칠어진다.

낮 12시 5분, 오름길 그 어느 모롱이에 고목과 낙엽이 깔린 길. 걷기를 멈추고 버석거리는 나뭇잎 위에 주저앉았다.

뒤돌아보면 아득히 먼 길, 고령읍시가지와 고분군이 교차하는 가야의 땅이 눈에 들어온다.

미숭산이 코앞이다. 미숭산이란 이름은 안동장군 이미숭에서 왔다. 그는 고려 충목왕 2년 1346년에 태어났다. 정몽주의 문인으로 학문을 익혀 안동장군에 이르렀으나 국운이 쇠퇴하자 고려 재건을 위해 진서장군 최신과 함께 미숭산을 근거지로 이성계에 항전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절벽에서 투신해 순절했다. 그의 절개와 충의를 기리기 위해 이름 지은 곳이 순사암이다. 순사암 북쪽 암반에 ‘여주이공휘미숭자정지지’ 라 새긴 각자가 아직도 남아 있다.

지금도 이 산의 정상부에는 둘레 497m의 산성이 있는데, 지형이 비교적 완만한 남쪽 성벽은 합천곤 야로면에, 지형경사가 심한 북쪽 성벽은 고령읍에 축조됐다. 갑옷과 칼을 묻었다는 갑검릉, 말을 달리던 주마대를 비롯, 망향대 장궁구 연병장이 남아 있다.

출발 3시간만인 낮 12시 24분, 정상에 도착한다. 북서쪽 조망은 우뚝한 가야산에서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매화산(남산제일봉), 우두산, 비계산, 오도산이 장막을 펼친다.

휴식 후 오후 1시 25분, 하산을 재촉해 미숭산성 길 입구를 통과해 내려선다. 산 아래 합천종합야영수련원이 보인다. 산객은 수련원 하산을 포기하고 백학산을 더 넘어 2시 44분 용리에 닿았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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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의 땅, 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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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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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신 정견모주의 혼이 서린 가야산이 눈앞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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