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위식의 발길 닿는대로 (75)고담사와 고불사
윤위식의 발길 닿는대로 (75)고담사와 고불사
  • 경남일보
  • 승인 2015.11.1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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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 단풍에 묻어보내는 빛바랜 정자 옛 이야기들
▲ 나박정과 성황당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이 가까워지고 있다. 왠지 초조한 기분이 든다. 불안감에 나 자신도 모르게 허둥댄다. 천천히 더 더딘 걸음으로 느긋하게 움직여 볼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35번 고속도로 생초 요금소를 나와 곧장 좌회전을 하여 양파모종이 파릇파릇한 ‘곱내들’을 벗어나 야트막한 산모롱이를 돌면 기암괴석으로 가파르게 비탈진 선바위산기슭을 따라 도로는 이어진다. 벼랑 아래로는 엄천강이 길을 따라 굽이져 흐르고 있어 멋스러운 풍광이다.

예사로운 풍광이 아닌 줄은 알면서도 언제나 힐끔 보고 지났던 길이라 모롱이 날머리에 차를 세웠다.

벼랑 끝에 선 느티나무와 도토리나무는 노령의 거목인데 가로수를 자청하고 낙엽까지 흩날린다.

거뭇거뭇하게 갈색이 배였어도 단풍의 빛깔은 아직도 고운데 성글어진 가지 새로 벼랑 높은 산중턱에 없는 듯이 앉은 빛바랜 정자가 애처롭다.

지켜보는 객꾼이 한 폭의 그림 위에 얼룩이 될까싶어 가던 길로 차를 몰아 화계장터 옆으로 임천교를 건너서 강을 따라 이어지는 마천 길로 들어서니 지리산 준봉들은 잿빛으로 물들고 있다. 자드락의 마을은 붉게 물든 감잎이 늦가을을 붙잡고 은행잎을 흩날린다.

굽이져 흐르는 강은 벼랑의 높낮이를 이리저리 바꾸는데 동호마을 들머리에 커다랗게 선 빗돌이 점필재 김종직 선생께서 차밭으로 조성한 유서 깊은 옛터다.

근래에 세운 정자인 청풍정은 찾는 이가 없어도 느티나무를 벗을 삼고 녹차밭을 지키며 선생이 남기신 많고 많은 사연들이 찻잔 속에 녹여질 날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야트막한 보는 쪽빛 강물을 한가득 품고 있어 쓰임새도 많아서 좋고 돈 안 들어 더 좋다.

풍경과도 어우러져 멋도 있고 정겨워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4대강의 별스러운 보(?)보다야 백배천배 좋기만 하다.

한남마을 들머리 느티나무숲속에서 ‘나박정’ 정자가 쉬어가면 어떠냐고 조심스레 운을 뗀다. 거북의 등을 타고 용틀임한 옥개석에 새까만 오석의 커다란 비석 앞에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세조의 왕위 찬탈로 생모인 혜빈양씨와 동기들마저 참화로 잃고 건너편 새우섬으로 위리안치형의 유배로 한 많은 생을 마친 ‘전주이씨 세종왕자 한남군 위령비’이다. 귀하디귀한 왕자의 몸으로 천리길 머나먼 곳에 유폐되어 상림 옆 산자락에 백골로 묻혔으니 설움인들 오죽했고 원한인들 오죽하랴.

역천과 질곡으로 얼룩진 역사를 더듬으며 나박정에 앉았다.

 

▲ 고불사 원경


도로로 나눠진 강섶 숲속에는 성황당 돌탑이 옛 세월을 지키면서 한남군의 설움까지 오롯이 품었건만 금줄을 둘러치고 말없이 숙연하다.

많고 많은 사람들이 빌고 빌던 돌탑 앞에 두 손을 모았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갈 곳 없어 헤맵니다. 위선과 독선에 유린당한 이상을 되찾게 해주시어 빼앗긴 희망을 되돌려 주옵소서!’ 수령 사오백년의 갯버들나무 전송을 받으며 새우섬의 굽이진 강을 따라 모롱이를 돌았더니 와룡대가 반긴다.

‘화연대’에 올라서 쉬어가라 붙잡는다. 물레방앗간 옆에는 마을의 내력을 일러주는 빗돌과 시비 둘이 마주보고 섰는데 이조년선생의 ‘다정가’가 새겨졌다.


언제 읊어도 가슴을 저리게 하여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게 하는 옛시조다.

이조년의 형인 이백년과 이억년이 은거하며 마을을 이루었다 해서 형제의 인연으로 시비를 세웠다는 백연마을을 지나면 작은 골짜기 마다 우람한 바윗돌이 계곡을 이루고 있다. 한 모롱이를 돌면 ‘동우대’이고 또 한 굽이를 돌면‘ 동신대’가 있고 ‘첨모암’이 있어 예사롭게 지나쳤던 비경들로 이어진다.

건너다보이는 작은 마을들이 늦가을의 정취에 흠뻑 젖어 고요한데 용유담의 자라바위가 새끼를 데리고 물위로 나왔다고 용유교가 객을 불러 기어이 보라한다.

모정이 정겨워서 용유담으로 내려갔다. 어지럼증을 떨치고 마천면 소재지에 닿자 5일 10일로 오일장을 지나 기흥교를 건너 벽소령 가는 길로 접어들어 마천초등학교를 지나서 4시방향의 비탈길을 올라 고담사를 찾았다.

‘ㄱ‘자로 곡이진 한옥이다. 단청도 꾸밈도 없는 단아한 절집의 정갈한 마루청이 가을볕을 받아 따사로운 정감이 아늑하게 배여난다.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언덕배기 위로의 거대한 마애불이다. 하얗게 정갈한 화강암에 굵은 선으로 도드라지게 새겨져 헌칠하고 건장한 법신에 위압감이 들어도 법의의 부드러운 곡선과 얼굴이 온화하여 경건함과 평온함을 함께 갖게 한다. 바위 높이 6.4m에 불상 높이 5.8m로 고려초기에 조성된 거대한 불상으로 보물 제375호인 덕전리 마애여래입상이라고 안내판이 일러준다. 삼배의 예를 올리니 왼발 아래로 연화대를 새긴 하대의 바위뿌리에 됫박만한 샘이 있어 마련된 쪽박으로 천천히 마셨다. 부드러우면서 뒷맛이 감미롭다. 이를 두고 감로수라 했던가.

큰길로 다시 내려 와서 벽소령과 백무동을 알리는 표지판의 안내에 따라 갈림길에서 백무동쪽으로 차를 몰았다.

깊숙하게 내려앉은 비경의 계곡을 따라 1km 남짓하게 왔을까. 승용차 두세대를 댈 수 있는 갓길에 고불사의 안내판이 정중하게 차를 세운다.

산중턱이 감싸 안은 고불사의 풍광에 넋을 뺏기고 한참을 바라봤다. 봉황의 둥지일까 선녀들의 별장일까 산색의 바탕위에 화려한 단청이 빛깔고운 단풍과 어우러져 황홀경을 이룬다. 아직도 객의 몫으로 단풍을 남겨 둔 것에 감사하며 계곡을 가로지른 출렁다리를 건너서자 이끼가 파란 돌계단은 고불거리며 높아지는데 세월의 흔적위로 낙엽이 소복이 내려앉았다.

낙엽 밟는 소리가 좋으냐고 묻지 마라/ 정취에 험이 될까 대답은 못하니까/ 뉘라도 와 걸어보면 물은 답을 알리라.

일주문도 없다. 내려다보면 천인단애의 벼랑일 뿐 손바닥만 한 마당도 없다. 집채만 한 바위틈에 요사채가 앉았고 바위틈을 돌아가면 관음전이 있고 틈새마다 미로 같은 돌계단을 헤매면 바위가 서로 괴어 석굴이 된 또 하나의 기도처고 석간수는 언제나 쪽박까지 마련했다. 지리산 준봉위로 쉬어가는 저 구름아/ 오색단풍 물든 절집 벼랑 높이 얹어 놓고/ 산승은 어디로 가고 객이 홀로 섰구나.


 


고담사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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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윤위식 2015-11-24 08:06:22
작가의 해명
신문의 글이 편집되어 삭제된 부분으로 인하여 글의 연결과 뜻의 이음이 끊어져서 작가로써 분통이 터진다. 내용을 모르는 독자들이 무슨 이따위 글을 실었냐고 할 때는 작가의 이미지와 경남일보의 위신까지 추락하여 망신스러워서 어쩌나! 삭제된 부분을 진한글씨로 밑줄을 그어 윤위식의 블로그(윤위식의 발길닿는대로)에서 참고가 되었으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윤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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