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리포트] 어머니와 함께 한 네팔순례
[시민기자리포트] 어머니와 함께 한 네팔순례
  • 경남일보
  • 승인 2015.11.18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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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게미 너머 짜랑까지, 유기농 토마토를 먹다
어머니와 함께 한 네팔순례<5> 게미 너머 짜랑까지, 유기농 토마토를 먹다

 
짜랑 가는 길, 멀리 마귀의 머리를 봉인했다는 초르텐이 보인다.


9월 26일. 아침에 눈을 뜨니,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롯지를 나와 보니, 어머니는 히말라야를 향해 기도를 올리고 계신다. 어머니는 여행 내내 기도를 하신다. 아침에 일어나시면 기도를 하고, 모든 고갯길 정상에 이르면 기도를 하고, 마지막으로 숙소에 도착해서 주무시기 전에 기도를 하신다.

어쩌면 어머니의 평생이 그랬다. 서른 일곱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기도로 지친 몸과 마음을 바로 잡았으리라. 그렇게 강건하게 45년을 살아오셨으니 이 험한 무스탕 순례를 나보다도 잘 해내고 계신 것이 아닐까? 사실 우리 어머니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이곳 무스탕의 가시덤불처럼 강인하다.

이제 트레킹에 몸이 적응했는지 발걸음이 가볍다.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길링 마을까지는 큰 고개가 없어서 편안하다. 길이 편하다 보니, 푸르바 입에서 흥겨운 네팔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 유명한 ‘레쌈 삐리리’다. 네팔을 여행하면 어디서든 이 노래를 듣게 된다. 그리고 중독성이 강해서 후렴구인 ‘레쌈 삐리리’를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고, 한국에 돌아가도 이 노래 가락이 귀에서 맴돈다. “레쌈 삐리리~ 레쌈 삐리리~ 우레라 자우끼 다라마 반장 레쌈 삐리리~” 노래 가락에 어머니도 장단을 맞추신다. 푸르바의 노래가 이어지고, 노래를 듣다보니 멀리 길링 마을(3570m)이 눈에 들어온다.

한눈에 봐도 아주 큰 마을이다. 마을 뒤 언덕 위로 제법 큰 규모의 곰파(절)도 보인다. 그런데 마을 풍경이 이제까지 보던 무스탕의 모습과 꽤나 다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인데…. 그렇다. 파키스탄의 훈자 마을이나 중앙아시아의 오지마을 같다. 황량한 무스탕의 골짜기에 키 큰 나무들이 쭉쭉 뻗어 녹음을 자랑하고 작은 개울 주변으로 푸른 풀밭이 펼쳐져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느낌이다. 무스탕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손꼽자면 이곳 길링 마을이 아닐까?



 
'짜랑 라' 고개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어머니


길링 마을 입구에 자리잡은 롯지에 짐을 내리고 모두 달밧을 주문한다. 네팔 사람들은 하루 세 끼 모두 달밧을 먹는다. 밥(밧)과 렌틸콩으로 만든 스프(달)에 감자나 당근 같은 몇 가지 채소 조림이 더해진 요리다. 치링, 푸르바, 카말, 키란이 달밧을 맛있게 먹는 동안 어머니와 나는 컵라면으로 배를 채운다. 점심까지 먹었는데 시계를 보니 정오도 되지 않아서 마을 뒤쪽에 있는 곰파를 둘러본다. 곰파의 법당 입구에 탱화가 그려져 있는데, 치링이 좀솜에서 만났던 형제 스님들께서 그렸다고 설명을 해준다. 길링 마을을 떠나 2시간쯤 걷다보니 눈앞에 멋진 불탑(초르텐)이 보이고 뒤로 꽤나 높은 고개가 솟아 있다. 우리의 무스탕 트레킹에서 유일하게 고도 4000m가 넘는 ‘니이 라’ 고개(4010m)로 고대 무스탕의 관문인 곳이다.

4000m 가까운 고도에 적응이 되어 있어서 크게 힘들이지 않고 정상에 오른다. 어머니는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히말라야를 향해 연신 두 손을 흔드신다. 여든이 넘어서 나도 어머니처럼 저런 순수한 마음을 간직할 수 있을까?

역시나 오후가 되니 강풍이 연신 몰아친다. 푸르바에게 목적지인 게미 마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보니 아직 두 시간은 더 가야 된다고 한다. 평탄한 길을 한 시간 반쯤 걷다보니 앞에 작은 고개가 나타난다. ‘게미 라’(3765m)다. 고개를 넘어서니 게미 마을(3520m)이 보인다. 마을로 내려가는데 왼쪽 언덕 위로 2백 마리는 넘어 보이는 염소 떼들이 우리를 유심히 지켜본다. 그러다 갑자기 몇 마리가 도망을 치기 시작하니 다른 놈들이 따라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언덕을 넘어 달아난다. 마을에 도착해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서는데, 넓은 정원에 코스모스가 만발하다. 게스트하우스 주인 아주머니의 여동생이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더 반가운 마음이 드는 숙소다.



 
짜랑 마을로 내려가기 전
짜랑 마을 입구에 있는 초르텐


9월 27일, 다시 길을 나선다. 게미에서 로만탕을 가는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무스탕 최고의 성지인 ‘가르 곰파’를 방문하기 위해 닥마르를 지나는 코스가 단연 으뜸이지만, 문제는 닥마르(3820m)를 지나면 고도 4000m가 넘는 고개를 두 개나 넘어야 한다. 아무래도 어머니에게 너무 무리인 것 같아 ‘가르곰파’를 돌아오는 길에 방문하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우리는 비교적 순탄한 짜랑 마을(3560m)을 지나는 코스를 선택했다. 짜랑은 수도인 로만탕 다음으로 큰 마을로 과거 왕들이 겨울에 머물던 왕궁과 유서 깊은 곰파가 자리잡고 있어서 둘러볼만한 가치가 있다. 게미 마을을 출발해 계곡을 따라 내려가니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놓여 있다. 말이 무서운지 다리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결국 카말이 어머니를 말에서 내리게 한 후, 말을 끌고 다른 길로 계곡을 건넌다. 계곡을 넘어 작은 언덕을 오르니 눈앞에 불경을 새긴 돌을 길게 쌓아 놓은 마니월이 길게 펼쳐진다. 티베트에 불교를 전한 성자 ‘파드마삼바바’가 죽인 마귀의 몸에서 흘러내린 창자를 봉인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멀리 초르텐이 보이는데, 마귀의 머리가 봉인돼 있다고 한다.



 
짜랑 마을 게스트하우스에서, 어머니와 주인집 아들


긴 마니월과 초르텐을 뒤로 한 채 평지가 끝날 무렵 큰 언덕이 눈앞에 나타난다. 갈지자 길을 따라 언덕 정상(짜랑 라, 3870m)에 오르니 룽다와 타르초도 없이 작은 돌무더기 위에 나무 기둥이 하나 꽂혀 있고 그 위로 행운을 기원하는 형형색색의 카타(스카프)가 뒤덮혀 있다. 모두 언덕 위에 편하게 누워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즐긴다. 하지만 강풍을 맞으며 걷다보니 몸에서 금새 기운이 빠져나간다. 다행히 녹초가 될 무렵, 짜랑 마을이 모습을 나타낸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 있는 타르초를 지나 치링이 소개한 숙소에 들어서니, 주인 아주머니가 너무 시끄럽다. 결국 지친 몸을 이끌고 조용한 게스트하우스로 숙소를 옮긴다. 그런데 이게 신의 한수였나보다! 게스트하우스 뒤로 넓은 텃밭에 작은 온실이 보이길래 들어가보니 방울 토마토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다. 어머니를 위해 잘 익은 놈들을 골라 두 손 가득 딴다. 오지인 무스탕에 농약이 있으리 없지 않은가? 말 그대로 히말라야의 정기를 받고 자란 무공해 유기농 토마토다. 어머니 이것 드시고 힘 내세요!

다음에는 마지막 이야기 ‘성지, 가르 곰파에 오르다’가 이어집니다.

정형민시민기자


 
'게미 라' 고개에서, 어머니와 카말
게미마을 게스트하우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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