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 여행] 부산 감천문화마을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 여행] 부산 감천문화마을
  • 경남일보
  • 승인 2015.11.2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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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

 

▲ 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담아 조각한 인간새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가수 노사연이 부른 노래 ‘바램’의 한 부분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늙어가는 것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익어가는 것이라고 한 말, 중년을 넘어서 노년으로 닿고 있는 사람들에겐 크나큰 위안과 꿈을 주는 말이다. 이 말은 모든 늙어가는 사람에게 던지는 ‘위안과 꿈’이면서 ‘충고와 경고’라는 생각도 든다. 나이 들면서 젊었을 때 발견하지 못한 자신의 끼(재능)를 찾아 그 끼를 살려 완성해 나가거나 자신의 나이에 맞는 취미활동을 통해 더욱 품격있는 ‘나이’를 만들어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자신의 끼, 취미, 학문, 예술 세계를 완성해 가는 과정을 일컬어 ‘늙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명명(命名)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번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1’은 국민체력센터(원장 이준기)에서 ‘2015 주민활동사업 우리 동네 건강지킴이와 함께하는 선진지 견학’의 일환으로 ‘부산 감천문화마을’을 탐방한 뒤, 낡은 감천마을의 부활과 76세 고령의 연세임에도 건강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문화해설을 하시면서 인생의 제2막을 행복하게 펼치고 계시는 손판암 선생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나이를 먹는다는 건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라는 커다란 ‘위안과 꿈’을 안고 돌아온 힐링여행을 소개하고자 한다.

 

▲ ‘별 보러 가는 계단’인 148계단



◇소외받은 감천마을이 문화와 관광의 중심이 되다

부산시 사하구 감천동에 있는 감천마을은 1950년대에 태극도 신도들과 6.25 전쟁 피난민들이 모여서 이루어졌다. 그동안 태극도마을이라는 이름의 저소득층 주거지로 낙후된 마을로 알려졌으나 부산지역의 예술가와 주민들이 합심해 2009년 마을 미술 프로젝트인 ‘꿈꾸는 부산의 마추픽추’ 사업과 2010년 콘텐츠 융합형 관광 협력 사업인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 사업으로 환경 정비와 벽화 사업이 이루어지며 현재와 같은 형태로 변화되었다. 천마산 기슭의 좁은 골목길과 저층형의 옛 주택들이 조화를 이루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고, 주민 생활 개선과 작은 카페와 가게 등이 들어서면서 감천문화마을은 부산의 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졌다.

긴 세월 소외받았던 감천마을, 하지만 지금은 그 낡고 소외된 마을이 ‘감천문화마을’이란 이름으로 당당히 부산의 문화와 관광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5년 전만 해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소외된 달동네 감천, 마을 곳곳에 벽화와 조각품을 설치하고 폐가를 활용한 공방을 만들면서부터 ‘문화마을’로 서서히 변모했다. 마을 초입 어르신들이 제작한 거대한 물고기 모양 입체벽화, 지붕에 앉아 있는 사람 얼굴의 새 조각품인 인간새는 날기를 꿈꾸는 인간의 욕망과 날지 못하는 현실의 아픔을 형상화시켜 놓았으며, 건너편 바다와 마을을 바라보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조각상, 한지꽃신 등의 전시체험공간, 무거운 짐을 지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문득 뒤돌아보면 현기증으로 눈앞에 별이 보인다고 해서 붙인 ‘별 보러 가는 계단’인 148계단, 어렵고 힘든 시절의 아픔이 층층이 쌓여있는 골목에다 전설을 찾고 이야기를 엮어 다른 곳과는 차별화된 매력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서 감천문화마을의 방문객 수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4년 한 해 동안 80만 명가량 다녀갔다고 하니 하루 평균 2000명씩은 꾸준히 외지인 탐방객들이 북적였다는 얘기다. 외지고 소외받던 감천마을이 이제는 꼭 가볼 만한 부산의 대표 문화관광지로 명성을 얻었다.


 

▲ 천덕수에 얽힌 전설을 듣고 있는 탐방객들


◇당당하게 자긍심을 짊어진 스토리텔러

감천문화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스토리텔러로 변신한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우리를 맞아 주셨다. 50여 년을 감천마을에서 사셨다는 76세 되신 문화해설사 손판암 선생님의 당당한 어깨에서 감천마을 주민으로서의 자긍심을 읽을 수 있었다. 힘들게 살아온 과거와 소외받은 세월이 남긴 상처는 털끝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탐방객들에게 마을의 생성과정과 숨겨진 마을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행복감이 온 얼굴에 가득했다. 그 모습에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나마 얻을 수 있었다.

“마을에 가뭄이 들어 개울과 우물에 물 한 방울 남지 않게 되자 어린 동생과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한 청년이 가족과 마을 사람을 위해 마을 한가운데 새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며칠을 밤낮없이 우물을 판 청년이 지쳐서 쓰러지면서 ‘하느님 제발 저에게 배고픔은 주되 다른 이들에게는 주지 말아주세요. 하느님 제발 저에게 고통을 주되 다른 이들에게는 주지 말아주세요. 하느님 제발 저에게 불행은 주되 다른 이들에게는 주지 말아주세요.’라고 하늘에 간절히 기도를 하며 눈을 감았다. 이를 지켜보던 하늘이 청년의 덕행을 높이 사 소원을 들어주게 되었는데, 청년이 파놓은 우물에는 항상 맑은 물이 가득하여 마르질 않았다. 청년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천덕수 앞에서 소원을 빌면, 덕을 쌓은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었다”는 ‘천덕수의 전설’을 탐방객들에게 전해주실 때는 마치 해설사가 천덕수 전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거룩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낡음의 미학, 오래된 미래

여든을 바라보는 연세인데도 자원봉사를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자신의 존재 가치가 상대로부터 존중받을 때 그것이 돈이나 물질보다 훨씬 더 가치롭다는 것을 깨달은 모습에서 호돈의 소설에 나오는 ‘큰바위 얼굴’을 만난 것처럼 즐겁고 뿌듯했다. 이처럼 세속적이지 않게 늙어가는 모습, 그러면서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며 나이 들어가는 모습, 자신의 재능과 끼를 아낌없이 다른 사람과 사회를 위해 베푸는 모습, 이러한 사람을 향해 우리는 정녕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낡은 감천마을에 배어있던 소외와 느림, 그리고 소박함이 마을 사람들의 노력과 발상의 전환으로 지역 문화의 중심지로 부활하고, 연세 드신 어르신의 잘 익은 ‘삶’을 보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푸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며, 또한 우리가 살아가야할 오래된 미래의 모습을 마음 속에 담아올 수 있다면 그것이 정녕 내적 깨달음을 위한 힐링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  
박종현(시인)



감천마을의 옛모습과 오늘날의 모습
감천마을의 옛모습과 오늘날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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