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의 지독한 일기쓰기
조상들의 지독한 일기쓰기
  • 경남일보
  • 승인 2015.11.2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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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경상대학교 도서관 문천각 사서)
이정희
고성 사는 농부 월봉 구상덕은 20세가 되던 1725년부터 별세하기까지 37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그는 자신의 일기를 ‘승총명록(勝聰明錄)’이라 이름했다. ‘총명함을 이기는 것은 명확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아도 기록이 더 낫다는 것이다. 자신이 살던 고성을 중심으로 벼농사와 보리농사의 파종과 이앙시기, 춘궁기의 생활문제, 물가변화, 자녀교육, 마을의 관혼상제, 보고 주워 들은 이야기 등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생활사 전반의 일들을 매일 적었다.

또 산청에 사는 선비 단계 김인섭은 20세가 되는 1827년부터 별세하기 직전까지 57년간 일기를 썼다. 단계문중에서 일기를 쓰는 전통은 단계의 부친 김령이 전라도 임자도에 유배 가서 쓴 ‘간정일록’으로부터 시작돼 김인섭의 ‘단계일기’를 거쳐 아들 김수로 형제, 손자 김창석, 김천수의 ‘치성일록’에 이르기까지 4대 동안 이어졌다. 현재 단계문중에는 1846년부터 1937년까지 92년간의 일기가 남아 있다. 그 가운데 1846년부터 1922년 5월까지 76년간의 일기는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일기에는 자신의 벼슬살이, 독서, 학문, 단성농민항쟁 전개과정 등이 기록돼 있다. 이 때문에 ‘승총명록’과 ‘단계일기’는 문화재로 지정됐다.

일기는 유명 인사의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농부 일기에서는 농촌사회의 현실을, 선비 일기에서는 지식인의 진솔한 삶의 모습과 고뇌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나아가 조선후기 농업사, 민속사, 사회사, 경제사, 교육사 등 여러 방면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기록이 된다. 또 개인의 일기가 국가의 역사기록과 결합되면 한 지역의 역사와 생활사를 더욱 자세하게 연구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일기쓰기는 학교 방학숙제의 필수과제가 됐다. 개학하기 직전 부모의 닦달에 의해 자녀들은 일기를 몰아 쓰기가 일쑤다. 그러다 보니 자녀들은 일기쓰기에 흥미를 잃게 되고, 사실과 어긋나게 쓰기도 한다. 일기쓰기는 강요에 의해 쓰서는 안 된다. 진솔한 삶의 기록이어야 한다. 따라서 흥미를 갖고 일기쓰기를 습관화하도록 지도해야 할 것이다. 일기는 자녀뿐만 아니라 누구나 적어야 된다. 개개인 삶의 기록은 역사가 되고, 문화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정희 (경상대학교 도서관 문천각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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