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진주성 성역화의 완성은 시대정신
[경일시론] 진주성 성역화의 완성은 시대정신
  • 경남일보
  • 승인 2015.12.0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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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진양성외수동류/총죽방란녹영주/천지보군삼장사/강산유객일고루(晉陽城外水東流/叢竹芳蘭綠映洲/天地報君三壯士/江山留客一高樓:진양성 밖 강물은 동쪽으로 흐르고/우거진 대숲과 향기로운 난초는 강물에 비추이는데/천지와 나라를 지킨 삼장사와/강산의 나그네를 부르는 높이 솟은 누각은…). 조선 숙종(1719)때 제술관을 지낸 신유한이 전국을 주유하며 쓴 시집 청천집에 수록된 촉석루와 진주성에 대한 시의 일부분이다. 진주대첩이 일어난지 100여년이 지나 청천(靑泉) 신유한(申維翰)이 본 진주성의 모습은 울창한 대숲이 강줄기를 따라 이어지고 강 언덕에는 각종 기화요초가 향기를 더하는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그곳에 임진년 삼장사의 얼이 살아 숨쉬고 있으니 진주성을 어찌 천하의 명승지라고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신유한은 진주성의 풍광과 그 속에 담긴 시대정신을 함께 읊은 것이다.

진주성은 치열한 전투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 전장이었다. 1592년 진주대첩에서는 3800명의 민·관·군이 2만여명의 왜군을 물리쳐 대승을 거뒀으나 이듬해 2차 대첩에서는 3400명의 군사가 9만3000여명의 왜군과 맞서 열흘이 넘는 전투 끝에 7만 시민과 함께 순국해 진주성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조선통신사의 일행으로 일본을 다녀온 신유한은 후에 해유록을 통해 일본을 다녀온 기록을 남겼지만, 그래서 진주성과 남강, 촉석루를 보는 감상이 남달랐을 것이다. 남강과 촉석루, 진주성과 대숲은 5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구하다. 비록 허물어지고 불타 다시 짓고 강줄기는 왜곡되고 대숲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옛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은 성역화 작업이 한창이다. 충절의 역사를 기리고 보전하려는 노력의 일단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성역화 작업과 병행해 반드시 정립해야 할 정신적 과업도 적지 않다. 끝내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경상우도의 유학 거두로 남아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 경(敬)으로 나를 밝히고 의(義)로써 나를 던진다는 경의사상을 전파한 남명 조식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의병들이 곳곳에서 봉기한 힘의 원천이었다.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그러하고 진주성을 지키는데 합류한 의병들이 남명사상에 심취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결기를 심어 주고 국가에 충성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남명은 가르쳤던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0년 전에 돌아가셨으니 남명사상은 전운이 감돌던 그 시대에 가장 절박하게 와 닿은 살아 있는 학문이었을 것이다.

일본 쿄토에 있는 코무덤도 잊어선 안 될 역사적 산물이다. 왜장들이 전과를 자랑하기 위해 전사한 조선인 군인과 살해한 민간인들의 코를 잘라 염장한 후 일본으로 보냈고,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를 일일이 확인해 장수들을 상 주는 척도로 삼았다고 한다. 또한 일본 전역을 순회, 전시하고 쿄토에 묻은 곳이 지금의 귀무덤이다. 짐작컨대 그곳에 묻힌 12만6000의 코무덤에는 진주성전투의 수많은 희생자들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진주성의 성역화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망라하는 컨덴츠의 다양성과 삼장사와 논개 등 전쟁의 주역들 외에도 이름 없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병과 코무덤의 희생자들에 대한 재조명도 반드시 따라야 한다. 역사적 사실을 되새기며 시대의 정신으로 삼을 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논개제와 개천예술제, 유등축제도 그 범주에 속함은 불문가지이다. 그리하여 성역화된 진주성을 입장료라는 부담속에 가두지 말고 누구나 찾아 경배하고 역사의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진주성의 성역화는 외형보다는 시대정신을 제대로 조명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경일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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