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리포트] 어머니와 함께 한 네팔순례
[시민기자리포트] 어머니와 함께 한 네팔순례
  • 경남일보
  • 승인 2015.12.0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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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끝> 성지, 가르 곰파에 오르다
어머니와 함께 한 네팔순례<6·끝> 성지, 가르 곰파에 오르다
 
로만탕 가는 일행 앞으로 초르텐이 보인다.


9월 28일, 새벽이 밝았다. 이제 무스탕 순례길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 순례길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참, 효자시군요. 부럽습니다”라고 말을 건넸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럽기 그지 없다. 이런 험한 곳으로 노모를 모시고 온 것이 잘 한 일인지도 모르겠고, 더구나 이런 여행 한 번으로 우리 자식들이 부모님의 큰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하늘의 보살핌으로 어머니와 이렇게 뜻 깊은 여정을 함께 할 수 있으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아침 8시, 짜랑의 게스트하우스 가족들과 기념 사진을 찍는다. 사실 히말라야의 잘 알려진 트레킹 지역은 관광지로 급속하게 변해가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깨끗하고 편리한 현대식 게스트하우스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여행객들이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환영할 일이지만, 큰 도시인 카트만두나 포카라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의 경우에는 가능한 전통적인 삶이 잘 보존되기를 바란다. 많은 여행자들이 네팔을 찾는 이유가 히말라야 때문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길 위에서 마주하게 되는 네팔의 시골마을과 주민 그리고 이국적인 문화에 매혹되는 경우가 많다. 장엄한 히말라야가 하늘을 받치고 있는 곳에 돈을 버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만 살고 있다면, 여행의 감동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서면, 너무 좋은 게스트하우스만 찾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로만탕 가는 길목 중간에 초르텐이 보인다.


보통 가이드은 시설 좋은 숙소로 안내하는데, 편하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하루 머무는 숙소의 기능밖에 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행객 스스로 마을을 한번 둘러보면서 직접 게스트하우스들을 둘러보면, 평생 기억에 남을 그런 곳을 찾을 수 있다. 이곳 짜랑의 ‘다모다르 쿤다 게스트하우스’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어머니는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이 집 아들이 참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무스탕의 수도 ‘로만탕’을 향해 길을 나서려는 순간, 수많은 염소 떼들이 길을 점령한 채 지나간다. 불쌍한 녀석들이다. 힘들게 좀솜이나 포카라로 이동해서, 네팔 최대의 명절인 ‘다사인 축제’ 때 제물로 바쳐지거나 식탁에 오르게 될 테니 말이다. 옆에 계신 어머니도 염소들을 보며, 측은한 눈길을 보내신다.

이제 출발이다. 어머니와 나, 가이드 푸르바, 포터 키란, 마부 카말, 촬영을 돕는 치링, 그리고 어머니를 태운 짱보, 이렇게 일곱 식구가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참! 그냥 가면 안 된다. 이곳 짜랑에는 유서 깊은 곰파(절)와 왕족의 겨울 별장이 자리잡고 있다. 어제 고개 위에서 짜랑을 내려다 보며 곰파가 아주 크다고 느꼈는데, 실제로 와서 보니 불상을 모신 법당 내부가 정말 클 뿐 아니라 성스러운 기운으로 가득하다.



 
로만탕을 앞두고 휴식을 하고 있는 어머니와 일행.


기념 사진이나 찍으려고 왔는데, 어머니께서 30분 가까이 기도를 올리신다. 짜랑 마을을 지켜주는 초르텐(불탑)을 벗어나서 계곡을 건너니 고갯길이 앞을 가로막는다. 20분 정도 걸었을까. 정상이다. 4000m는 될 것 같은데, 고지에서 일주일 넘게 보내고 있으니, 이제 집 뒷동산에 오르는 기분이다. 그런데 이 고개를 뒤로 하고 두 시간을 걸어도 계속 평지다. 솔직히 말하면 짜랑부터 로만탕까지는 그래서 걷는 재미가 크게 없다. 중간에 마을도 없고, 끝없이 평평한 길이 계속되니 말이다. 간혹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지프가 반갑게 느껴질 정도다. 그나마 중간쯤에 자리잡고 있는 큰 초르텐이 잠시 무료함을 달래준다. 정오 무렵 큰 초르텐을 지나 세 시간을 더 걸으니 눈 앞에 큰 마을이 하나 보인다. 바로 로만탕이다. 그런데 그동안 상상했던 불교 왕국 무스탕의 수도 ‘로만탕’과는 너무 다르다. 어머니 얼굴을 보니 모전자전이라고 해야 할지, “아들아, 저게 왕국 맞니?”라고 물으신다. 나는 애써 실망감을 감추며 “어머니, 로만탕 맞아요”라고 대답을 한다.



 
무스탕 전통 의상을 입으신 어머니


거짓말을 할 순 없으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조금은 티베트의 라싸 같은 곳을 상상했고, 포탈랍궁 같은 유적도 마음 속에 그렸다. 한마디로 말해자면 로만탕은 그런 곳이 아니다. 절대로!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맞다. 어퍼 무스탕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그리고 이 마을에는 왕과 왕비가 살고 있다. 더구나 요즘에는 두 분이 카트만두에서 지내실 때가 많다. 놀랍게도 이곳 로만탕에서 카트만두와 포카라에서나 경험하는 왕성한 영업 활동을 다시 체험했다. 가게를 지날 때마다 주인들은 여행자들을 부르거나 명함을 건넨다. 그러니 무스탕 순례에서 로만탕은 절대로 목적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무스탕 순례에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순례란 무릇 목적지로 향하는 그 길 위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그렇지만 목적지까지 아름다우면 얼마나 멋진 여행이 되겠는가. 다행히 우리의 무스탕 순례는 정말 감동적으로 끝이 났다. 바로 ‘가르 곰파’가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13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가르 곰파를 방문했다. 가르 곰파는 티베트와 무스탕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자 성지에 속한다. 가르 곰파에 도착하니, 노스님 한 분이 법당에 앉아 조용히 북을 두드리며 불경을 읊고 계신다. 어머니께서 부처님의 자비심 속에 눈물을 흘리시며 108배를 올리신다. 고혈압과 관절염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던 분이 마치 최면에 걸리신 듯 울음을 쏟아내시며 연신 절을 올리신다. 나는 곁에서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히말라야를 찾을 때마다 인생에 대해 깨닫는 한 가지 교훈은 분명하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자신의 몸을 혹사하며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것일까. 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기꺼이 희생하려 하는가.



짜랑의 곰파에서 기도하시는 어머니.


히말라야는 그저 오늘 행복하라고 가르친다. 어머니의 짙은 눈물 속에서 지난 삶에 대해 깊은 회한을 발견한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가족을 위해, 자식을 위해 너무 많은 걸 희생했다. 가슴 속에 히말라야보다 높은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어머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정형민시민기자

※그동안 ‘네팔 무스탕 순례 이야기’를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짜랑 지나 고갯길, 멀리 왕족의 겨울 별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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