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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65)<125>2015년 남강문학회에서 만난 문학인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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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03  21: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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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번에 특별한 이력을 지닌 남강문학회 회원 한 분을 만났다. 박준영이라는 시인이다. 그러나 시인으로서보다 필자가 눈여겨 보고자 하는 것은 성공한 방송인이자 역량 있는 콘텐츠 전문가 쪽이다. 그는 진주사범학교를 나와 진주 천전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가난하게 자랐던 박준영 시인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다음과 같은 시를 쓰기도 했다.

“한이나 없게 시험이라도 한 번 쳐 보라고/ 웬걸, 떡 하니 수석 합격/ 전쟁 통에 장학금도 없던 그 시절/ 입학등록금을 꾸러 읍내 이 집 저 문고리를 잡는다// 해는 뉘엿 뉘엿 배에선 꼬르록/ 마지막 두드린 대문을 들어서자/ 와아 찬바람 사이로 된장냄새, 목구멍을 타 내리는 쑥국/ 등록금은 못 빌려도 그 쑥국 한 그릇만 먹어 봤으면// 어깨 축 늘어진 아버지의 다 떨어진 검정 고무신/ 뒤꿈치를 따박 따박 따라 밟으며/ 봄은 진달래 진달래 오고 있었다// 지금도 아버지 고무신 뒤축 그림자는/ 쑥국 쑥국 그 시절 쑥국을 끓이고 있다”

어려웠던 유년 시절이 잘 형상화된 시다.

박준영 시인은 옛 동양방송(TBC)과 KBS, SBS 등에서 PD와 본부장, CEO에 이르기까지 영화, 애니메이션, 제작, 편성, 경영, 기술 등 전분야에서 경륜을 쌓은 시장과 현장을 잘 이해하는 전문인이다. KBS 재직시는 당시 KBS 3TV로 알려진 교육방송의 KBS가 담당한 반 이상의 편성과 제작을 책임지기도 했다. 특히 대구방송 사장과 KBS미디어 사장으로 경영능력이 뛰어나다는 세평을 얻기도 했다. 상암 DMC에 위치한 21층의 KBS미디어 사옥은 사장 재직시 흑자 경영을 통해 마련된 종자돈으로 지어진 것이다. 부장 이상 중견 방송인들 모임인 여의도클럽의 발기인으로 그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박준영 시인은 제2기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재직시에는 방송의 공정성을 위해 힘썼고 규제 완화 및 한류 확산 등 콘텐츠 육성에 힘을 쏟았다. 특히 국악과 문화 예술 콘텐츠산업 진흥 정책에 다대한 관심을 갖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40여년간 방송, 콘텐츠산업 분야에 종사하면서 획득한 자신의 소중한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중앙대, 고려대, 건국대, 동서대, 국민대 등에서 방송 편성과 제작, 영상 비즈니스, 방송경영과 방송 정책, 미디어 산업론 등을 강의하며 후학 양성에 남다른 땀을 흘렸다.

그리고 박준영 시인은 영상콘텐츠 유통을 위해 깐느의 MIP-TV에서 한국 최초로 프로그램 판매의 문을 열어 한류 1호로 알려져 있다. 방송위원 근무를 할 때에도 MIP-TV에서 한국대표단을 이끌고 한류의 중심에 서서 프로그램 수출을 진두지휘했다. 부산 콘텐츠마켓 집행위원장을 맡아 그동안 쌓아온 영상 콘텐츠 유통과 관련된 탄탄한 국내외 네트워크를 활용, 단 2년만에 성공적인 국제행사를 치러 마켓을 튼튼한 반석 위에 올려 놓았다.

또한 그는 1970년대부터 ‘우주소년 아톰’ ‘개구리 왕눈이’ ‘코난’ ‘짱가’ 등 40여편의 유명 애니메이션의 명작사가이며 ‘떠돌이 까치’와 ‘아기공룡 둘리’ 등의 TV만화 영화를 기획하여 국내 최초로 창작 TV 애니메이션의 시대를 연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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