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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플러스 <132> 웅석봉겨울의 초대, 첫눈 차려입은 하얀 산마루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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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03  20: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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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눈이 내린 지리산 웅석봉. 밤머리재코스는 편안한 등산로이면서 지리산의 위용을 보면서 걸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눈이 내리는 날 결혼을 하면 행복하게 잘 산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한때 눈이 내리는 날 결혼하겠노라고 다짐을 한 적이 있었다.

지리산을 비롯한 경남서부지역의 첫눈 소식은 어두운 시절 이 나라 민주화에 한평생 몸 바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리던 때였다. 나랏일을 한 분이 세상과 인연을 다하고 우뢰와 같은 침묵에 드는 날, 이때 내리는 눈의 의미는 무엇일까. ‘영광의 순간은 짧았고 고뇌의 시간은 길었다.’ 고인의 말처럼 일평생 고단했던 수고를 하늘이 어루만져 주는 위로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대통령이 영면에 들었던 그날 지리산에는 하얀 눈이 펑펑 내렸다.

그 이튿날 취재팀은 지리산 웅석봉(1099m)에 있었다. 100명산에서 웅석봉 내리코스 산행을 한적이 있지만 밤머리재코스는 처음인데다 첫눈에 이끌렸다. 이른 아침 진주에서 북쪽을 향해 명석마루를 넘어갈 때 올려다 보이는 지리산은 여느 조무래기 산과는 확연히 구분됐다. 아이스크림 같은 하얀 눈을 둘러 쓴 산은 마치 내가 지리산이다. 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그 옆 동쪽 줄기 웅석봉 역시 백설기 같은 눈꽃을 피워 지리산 영역임을 뽐냈다.

▲등산로, 밤머리재→기산·대장마을기점봉우리→왕재·내리저수지 갈림길→헬리포터→어천마을 갈림길→웅석봉(반환)→왕재→밤머리재 원점회귀. 10.6km 휴식 포함 6시간 4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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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읍에서 밤머리재로 오르는 59번 산악도로는 제설작업 덕분에 차량운행에는 지장이 없었다. 산 넘어 시천파출소 관계자들이 걱정이 됐는지 순찰차를 타고 올라와 있었다. 심성보 소장은 어젯밤 눈 때문에 시천 쪽에서 차량통제를 했었다고 전했다.

들머리 밤머리재는 밤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 시천·삼장면과 산청읍을 잇는 산악도로가 관통한다. 최근엔 ‘친환경로’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졌다. 해발 570m의 높은 위치에 있어 구름과 안개가 수시로 넘나든다. 이 재를 기준으로 동쪽에 웅석봉이, 서쪽에 왕등늪이 위치하고 있다.

오전 9시 20분, 도로를 건너 웅석봉으로 향한다. 처음부터 오름길인데 눈이 쌓인 탓인지 힘든 줄 모르고 첫 봉우리 기산 대장마을기점까지 단숨에 올랐다.

나무계단을 지탱하는 그루터기가 등산화 발밑에서 맥없이 주저앉을 정도로 등산로를 정비한지 오래된 모양이었다.

밤머리재코스의 압권은 지리산을 아주 가깝게 볼 수 있는 조망권이다. 덤으로 왕산 필봉산 황매산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날은 지리산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전날 내려 쌓인눈이 휘달리던 북풍과 만나면서 엄청난 양의 구름을 ‘푹 푹’ 토해내고 있었다. 마치 지리산은 구름을 만드는 공장 같았다.

진행해야 할 웅석봉은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채 곰산의 명성을 드러내 보였다. 일단 첫 봉우리에 올라서면 고도차가 크지 않아 비교적 편안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비럭이나 험한 구간에는 우회할 수 있도록 등산로가 만들어져 있다.

웅석봉은 1983년 11월 군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봉 하봉을 거쳐 쑥밭재 새재 왕등재 깃대봉, 밤머리재로 내려 잠시 숨을 고르다가 다시 한 번 옹골차게 치오른 산이다. 곰이 웅크리고 있는 듯한 모습 같다고 해서 웅석인데 워낙 산세가 험해 곰이 떨어져 죽었다는데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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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30분, 출발 2시간 10분 만에 왕재 갈림길에 선다. 이정표는 선녀탕 2km, 웅석봉 2km를 가리킨다. 좌측 선녀탕과 내리계곡으로 하산할 수 있다. 급격하게 떨어지는 길이어서 겨울 눈길에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계곡 끝에 신이 빚어놓은 선녀탕이 있다. 하느님의 실수인지 웅석봉에 대한 배려인지 인간의 계곡에 신의 예술품이 한 덩이 떨어져 있다.

왕재부터 다소 오름길이다. 바위들도 드세고 벼랑은 더 높아지고 깊어진다. 좌측은 천 길 낭떠러지이며 오른쪽은 육산의 완만한 경사로 대조를 이룬다.

큰 벼랑이 나타난다. 벼랑 중간 바위틈에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소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다. 2003년 고사한 거제의 해금강 사자바위 맞은편 천년소나무를 닮았다. 한줌의 흙에 의지한 채 한모금의 수분이라도 자연의 허락 없이는 보장받을 수 없는 위험한 운명을 지닌 위태로운 생명이다.

벼랑의 소나무와 어울린 조망이 아름답다. 지나온 산줄기와 지리산 풍경, 경호강의 깊고 푸른 물, 둔철산 황매산의 산세가 유장하게 펼쳐진다.

가쁜 숨을 몰아쉬어 마지막 산봉우리에 다달았을 때, 발아래 넓은 공터에 헬기장이 보인다. 그 순간, 눈높이에 웅석봉이 성큼 다가와 있다. 헬기장까지는 경사가 심해 눈이 구렁 쪽으로 한곳에 몰려 있어 무릎까지 빠진다. 헬기장에서 남쪽으로 30m 내려서면 샘터가 있고 샘 옆으로 가면 청계방향 임도 길과 연결된다.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 양옆에 구상나무단지가 조성돼 있다. 눈이 쌓인 구상나무는 그야말로 영락없는 크리스마스트리다.

12시 50분에 정상에 닿는다. 구절양장 굽이치는 생동감을 자랑하는 경호강과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다.

정상에선 네 방향으로 하산할 수 있다. 지곡사와 내리저수지 방향 5.3km, 어천계곡 방향 4.5km, 단속사 방향 청계 8.4km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길이 달뜨기 능선이다. 이 능선을 따라 큰등날봉→고령토채취장→백운계곡으로 내려간다. 이 능선은 한국전쟁 후 중봉 아래 치밭목비트에 몸을 숨기고 있던 빨치산이 이 능선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보며 고향생각에 잠겼던 곳이라고 한다. 가슴 시린 우리 현대사의 상징적인 명칭인데 실제는 웅석남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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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석봉에서 반환해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일찌감치 구름 때문에 지리산 천왕봉 조망이 틀렸다 했으나 늬엿늬엿 해가 지면서 이색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푸른 하늘을 가리는 검은 구름과 산 실루엣, 어느 것이 경계인지 모를 어느 지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강렬한 햇살이 뻗어 내려 삼장면 홍계리의 어느 마을을 비추고 있었다.

발길을 재촉해 어둠의 그림자가 짙어지는 시각 오후 4시 20분 밤머리재에 원점 회귀했다. 서쪽 신비의 왕등늪지는 2026년까지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돼 있다. 해발 900m 고원에 형성된 습지로 생물의 다양성과 희소성 때문에 보존가치가 높은 곳이다. 뻐꾹나리 꽃창포 숫잔대 동의나물 사초·난초류 등 식물류 58종, 멧돼지 등 포유류 13종, 원앙 붉은 배새매 까막딱따구리 새홀리기 등 조류 72종, 개구리 뱀 파충류 8종, 잠자리 메뚜기 나비 벌 등 곤충류를 비롯해 총 348종이 서식하고 있다. 꼬마잠자리가 유명하다. 한때 500원짜리 동전만한 잠자리가 살고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소식이 뜸한 걸 보면 종적을 감춘 듯하다.

한때 촬영을 위해 이곳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이탄층이 형성돼 있어 스펀지를 밟는 것처럼 탄력이 느껴진다. 주변에 백년이 넘은 돌배나무군락지가 원시적인 느낌을 준다. 왕등재는 왕이 올랐다고 해서 부르는 이름. 신라에 투항한 가락국 구형왕의 지칭인 듯 한데 인근의 왕산 필봉산 구형왕릉, 국골 등이 모두 왕국의 지명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서왕등재에는 아직도 토성 석축이 남아 있다 한다. 어둠과 침묵이 내리는 밤머리재 길을 돌아 내려올 때 고인이 된 대통령의 뉴스가 들렸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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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구름, 지리산실루엣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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