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칼럼] ‘침묵’이 오기 전에
[대학생칼럼] ‘침묵’이 오기 전에
  • 경남일보
  • 승인 2015.12.0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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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경상대학교 신문사 편집국장)
지난주 여느 때와 다름없이 10년 지기 친구와 동네 골목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 등 막연한 대화였지만, 이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밤은 어두웠고 이따금씩 들리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와 골목을 지나는 오토바이 엔진소리 외에는 별다른 기척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가운데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모든 것은 말에서 시작된다.’

일차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좀 더 넓은 차원에서는 개개인의 말이 하나의 덩어리로 군집해 ‘여론’이 형성되며, 정책결정자들은 이러한 여론을 ‘정책’의 시발점으로 삼는다. 또한 다양한 말들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뭉쳐지면서 다양한 ‘입장’이 만들어지고 덩어리가 커지거나 줄어들면서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이처럼 말은 일차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이기도 하면서 모든 일을 시작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이 ‘말’이 제 가치를 잃고 있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국민들의 여론은 ‘헤아림’의 대상이 아닌 ‘취사선택’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더 이상 ‘말이 말같지 않게’ 된 상황은 대학에서도 나타났다. 말을 듣지 않는 국립대학에 정부는 돈줄을 끊어버리려 한다. 오싹한 논리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대학이 끼니를 거르더라도 ‘본분’을 지키겠다고 나선 상황에서도 ‘말’의 가치는 왜곡될 위기에 처했다. ‘민주화의 결실’이라는 총장 ‘직선제’의 내막에는 또다시 수만 명의 말보다 ‘유효한’ 수백 명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총장선출 방식에 대한 의사결정자들의 선택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대학의 앞일을 좌우할 막대한 사안에 대학 구성원, 특히 절대 다수인 ‘학생’들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돼 왔는지 의문이다. 하나의 주체가 주요 사안에 대해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다고 해서 구성원들의 여론을 ‘수렴’하고 ‘설득’해야 할 필요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 사람들은 차선책으로 ‘침묵’을 택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밤늦은 시간까지 걸었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어두운 동네 골목처럼 말이다.
이지훈 (경상대학교 신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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